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새벽 4시에 빗방울이 대지에 첫발을 딛이는 소릴 듣고 깼다
뒷마당 빨래를 걷으러 일어나 나가니 마악 시작한 비가 노란 살구의 이른 잠도 깨우고 있는 중이다.
장독 뚜껑 대신 덮어 둔 스뎅 다라이에 노란 살구가 뗑그랑 땡 하고 떨어졌다.
빨래를 우르르 걷어서 마루 의자에 던져놓고 다시 잠을 청한다
다섯시쯤 비가 마당 구석구석을 쓸고 다닌다.
12시에 시누남편의 칠순 잔치가 있다
예전처럼 집에서 장보고 음식만들고 동네 사람 청하는 잔치가 아니고 식당에서 한다.
그렇게 하니 일은 식당에서 다 해주고 딸, 아들, 손자, 사위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인사를 하러 다니면 된다.
아버님 칠순 때, 나는 둘째를 낳고 일주일이 된 날이였다.
엿새째가 되는 날 고스방은 아버지 칠순에는 모든 식구들이 다 있어야 하다는 주장으로 아이와 나를 황간으로 데려왔다.
이틀 동안 찬물에 빨래하고 누워 있으라해도 누워 있을 곳도 없고 밥 챙겨 먹고 했다
지금 손가락이 그렇게 아픈 것도 그 때 조리를 못해서 그랬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점심을 먹고 빗속을 달려 다시 집으로 온다
피곤해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 났더니 전화기에 문자가 와있다.
-제가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혹 뉴질랜드로 오게 되면 연락바람. 한메일 가능-
떠나는구나. 또 떠나는구나
날이면 날마다 악다구니로 악을 써야 겨우 살아가는 이 땅을 떠나는구나
발길에 사람 채일 일도 없는 말로만 듣던 넓은 땅
터져 나오는 오줌을 화장질에 가서 해결하는데 그냥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일어 날 수가 없다.
-서울 오시면 연락 하세요 술 한 잔 하게요-
그는 내가 전화를 하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 약속 지키지도 못하고 이젠 먼 이국땅으로 간다니, 내가 언제 뉴질랜드로 날아가 술 한잔 하겠는가
영 날아간 약속이다.
비는 그쳐가는지 작은 소리로 내린다.
저녁 끼니가 되었다.
그냥..
어제의 전의는 다 어디로 가고 나는 고단하게 앉아 이런 생각이나 한다.
'어데 우렁각시 하나 있어, 오늘 저녁, 이렇게 힘 빠지고 맥 풀린 한 때(끼니)를 책임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디 잘 사시오
나는 아시다시피
존나게 잘 살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