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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꿈

황금횃대 2008. 7. 23. 19:52

안개부족

 

 

백내장을 앓는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간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안개의 부족이었다

눈동자에 찍힌 안개의 紋章 아니어도 증거는 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니지만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안개 위로 떠다니는 것이 틀림없다

마른 논바닥처럼 먼지 풀썩이는 상심 따위도

그녀에게 기대면 금방 촉촉하게 젖어든다

사물의 경계가 지워진 짙은 안개 속에서도

매일 똑같은 자리에 밥상을 차리고 반듯하게 신발 벗어 놓고

가족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그녀를

다른 부족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몸속 어딘가에 안개의 늪을 품은 채

날마다 조금씩 지위지는 그녀

지워진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닌 줄 알지만

세상의 모든 모서리를 지우고 싶은 그녀

누군가가 재빨리 끼워 넣은 눈물쯤은 모른 척 넘기면서

흐린 수채화처럼 점점 더 아득해지는 그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서

젖은 발자국 위에 엎드리고 싶은 아침

손때 묻은 햇살 한 줌 수줍게 꺼내 보이며

배시시 웃는 그녀

 

박미라 2008 시집 안개부족  애지

 

 

詩를 읽어도

내장이 쩌릿`하지 않는걸보아

나는 영 시를 잃었거나 아니면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나 내 사는게

詩보다 더 詩같아서 그런걸까

하루를 꽉`차게 살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오면

그냥 입이 다물어져

이것도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나 입 벌려 "뿌듯, 어쩌고 저쩌고"하면

꽉 차있던 그것이 입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 나올 것 같아

거 왜 있잖아 오징어 순대 만들 때

오징어 몸통에 속을 채워 놓고 아구리를 이쑤시게로 꿰매도

불 위에 찌면 속엣 것이 이쑤시게로 꿰맨 틈으로

꾸역꾸역 삐져 나오잖아  그거처럼 말야

 

어제는 말야,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첨으로

도서관에 갔단다. 그것도 책 읽으러 열람실에 말이야

물론 집에서도 가물에 콩 나듯 책을 읽기야하지

그러나 어제처럼 책만 읽는 시간을 몇 시간 가져 보는게 어찌나

꿈만 같던지..

그래서 그런지 도서관 마당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걸 보았는데

아침에 그 풍경이 꿈에서 봤던건가 현실에서 봤던건가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

한참을 주변의 기억까지  떠 올린 후에야 <도서관에서 보았구나>했지

세 시간 책 읽다 저녁 한다고 오토바이 타고 영동에서 황간으로 넘어 오는데

세상의 시간은 땅거미가 내려 어둑한데 나는 오래된 외투를 벗어 던진 양

마음 한켠이 시원하고 환한거야.

좋은 꿈을 꾸었나봐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