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해도 내처 보충수업을 가던 아들놈이 이번 토요일은 논다고 누나랑 영화보러 가잔다
조조상영을 보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간다고 평상시 같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김천으로 갔다
나는 아이들 보다 먼저 나와 밭으로 가서 애기고추를 따고, 가랑파가 비 때문에 망하는게 아까와 빈 터에 풀을 뽑으며
모종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야! 어디야?"
"밭인데요"
"오늘 그튼날 애들한테 밭에 가서 풀 뽑자고 얘기하고 같이 일하지 영화는 무슨 어러주글 영화얏!"
말끝마다 못마땅한 걸 강조하느라고 끝글자에 사이 시옷을 반드시 붙인다.
"방학이라도 아덜 데리고 어디 여행을 가나 놀러를 가나, 그래서 내가 영화보고 오라 구랬어요. 나도 가고 싶은 걸 아버님 어머님 점심밥 때문에 간신히 참고 안 갔꾸만"
"아덜 교육을 그 따위로 시키니까 생전 집안 일 거들줄도 모르고 그러는거야"
"아, 됐어요. 궁디 왕땀띠가 나도록 종일 걸상에 앉아 공부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영화보는 그거가꼬 뭘 그래 나무라싸요."
"아덜은 하여튼 니가 다 조지놓는다 에잉. 니가 그래 키우던지 말던지 난 상관 안 햇!"
"알았구마. 내가 내 아 내 방식대로 키울꾸마" 해 놓고는 전화를 끊는다.
폴더 닫는데 저쪽에서 <흐이고 참..>하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듣긴다
아니, 영화 한 편 본다고 세상이 무너지나, 여름이 겨울되나, 땀구멍이 막히나. 하여간 뭘 하려고 하면 막아서기부터 먼저하니.
분명히 2절까지 하라면 나는 부개동꼴짝에서 보릿단 지고 와서 마당에 멍석 깔아 놓고 보리타작 해 가며 공부했다는둥. 지금 니들처럼 손깝육깝 까딱않고 공부 했으면 박사 할애비가 됐겠다는 둥. 맨날 새까만 보리밥에 까만 김치만 싸가지고 가서 밥도 같이 못 먹었다는둥...구구절절, 구절양장, 타령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갈 것이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 두번이지. 언놈은 흰 쌀밥에 계란 후라이만 먹고 공부했냐? 다아 서넛 되는 동생 보살피고 엄마 일 하러 가면 저녁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공부했지. 공납금 없으면 거 뭐냐 생활보호대상자인가 그거 증명 발부 받아 수업료 면제받구...다들 그러구로 공부했지. 어떨 땐 결국 한 마디 해서 대못을 고스방 가슴에 박기도 한다.
"당신 암만 그래봐야 공부 포기했잖아. 진짜 공부 잘하고 끈기 있는 사람은 열번 스무번 휴학하고도 자기가 벌어 공부 계속하고,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공부해서 장학금 받아 공부 한다규, 이거 왜 이래. 다 아 당신 의지가 약해서 공부 못한 거 가지고 뭔 보리타작에 멍석 타령이여!'
이러면 찍소리 못한다. 나도 거기까지는 안 가고 싶은데 우씨...
아이들은 내가 준 이만원 얻어서 기분 좋게 영화를 보고왔다. "엄마 딥따 재미있고 웃겨, 아빠랑 같이 보러 가"
아들놈이 찔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내게 이야기한다.
"느그 아부지가 그런거 보러 가자 하면 또 날 나무랄게다.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라구. 분명 이렇게 말할 거야. <니가 정신이 있는기가 없는기가, 돈 한 푼 벌려면 얼마나 오장육부를 긁어야하는데...어쩌구저쩌구.."
그러는 고서방은 수박 한 덩이를 일만 삼천원에 사오고, 나는 수박 사 먹을 돈을 아껴서 영화를 본다.
가치관의 차이일뿐.
그나저나 고스방,
당신이 아무리 아끼고 아득바득하며 쫄아부쳐도 당신 인생이 선선히 당신 한테 영화 한편 맘 편히 보고 오라고 이야기 할거같어? 천만에.
죽을 때까지 그러고 살아봐 생활이란 괴물이 한번을 느슨하게 손 놓아주는가. 그냥 수박 한 덩이, 참외 한 봉다리 덜 묵고 영화 한편 때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