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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횃대 2008. 8. 17. 08:42

 

 

 

 

시집을 읽을 때는 쌍팔년도 서울 올림픽이 열릴 때였다

대구의 여름은 올림픽 중계를 보는 내내 육실하게 더웠는데 나는 그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연애에 실패를 하고 상심천만이였던 것이다.

모두가 나가버린 집에 늦으막히 일어나 청소를 하고 일하러 나간 엄마가 미처 치우지 못한 부엌설거지를 마저하고는 종일 퍼대지고 앉거나 눕거나 하면서 티비중계에 목을 매달았다.

그것마저 심드렁한 저녁 시간이 되면 그제서야 곁에 두었던 시집이나 책을 들어 몇 자 읽었는데, 그 때 오규원씨의 시집을 참 열심히 읽었던갑다.

연애에 실패한 여자의 눈에 한 잎의 여자 어쩌구저쩌구 하는 시는 내 취향이 아닌 정도가 아니고 목구멍에서 가래침이 올라오는 거부감이 있으니 휘딱 넘기고 김씨의 마을편이나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편을 열심히 읽었다. 밑죽 좍좍에 낱말찾기 한 흔적까지 남아 있다.

그러고도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면 책장 빈 공간에다 뭐라 끼적거려놓았다.

이십년이 다 되어 책을 펼치니, 손때 묻은 책의 가장자리는 누렇게 변했고, 그 속에 눌려 있던 글줄은 색도 변하지 않고 박제되어 있다....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