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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있다

황금횃대 2008. 9. 12. 08:09

추석이 한 발, 한 발 다가와 이제 대문 앞 삽짝까지 들어 섰다

아랫집 선우 아저씨네는 어제 할마이하고 호두나무를 털었다.

선우 아저씨는 호두나무 위에 올라가 감 전지로 호두나무 가지를 탁탁 때리고

병이 떠날 날 없는 아저씨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댕기며 호두를 주워 담았다.

올해는 비가 그리 많지 않아 호두잎이 아직도 시퍼런게 호두도 건실하지 싶다

그러나 딸인지 아들인지 쏟아봐야 알고, 잘 익었는지 설 익었는지는 떡 시루 엎어봐야 안다고

호두도 풋껍질 깨고 알 호두 까봐야 호두 농사가 잘 됐는지 잘 못됐는지 알 수 있다.

 

종기네 대추나무는 작년까지는 대추 솔찮히 떨었었는데 저사리가 피어 오르는 바람에 고만

그것도 베어졌다. 양샘 우리집에 오면 대추나무에 일별을 주고, 대추 익으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도 이젠 저 멀리 멀어져간 일이 되었다. 이렇게 사물은 한 시라도 옛것이

유지되지 않고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포도도 어지간히 다 따냈고, 짬봐서 밭 정리나 하면 되고, 초여름 볕에 끄실리가며 심었던 들깨도

키가 얼마나 커버렸는지 통제불능이다. 가을 들판은 바야흐로 얼마나 제 종족의 씨앗을 많이 남기

느냐가 가장 큰 숙제이다. 너도나도 열매를 매달고 내리쬐는 가을볕에 댕글댕글 굳히기 한 판으로

들어갔다.

잎새기들은 시름시름 말라가고, 줄기차게 내뻗던 호박 덩쿨도 주춤한다.

들깨 여물어 털면 서너가마니 나올거라...꿈만 야무졌던 여름이 가고 있다.

 

그저께 밤에는 어금니가 아파서 포도 작업을 하는데 턱주가리며 눈두덩이며 열이 활활 난다

이놈의 치통은 꼭 저녁에 시작된다.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진통제 한 알 삼키고는 똥 씹은 것은

저리가라는 표정으로 일을 하는데 서울에서 포도를 가지러 오밤중에 손님이 왔다.

먹고 사는 일도 치열하고, 먹겠다는 의지도 밤을 밝히며 뜨겁다.

 

오늘 5킬로 박스 서른개 작업해서 농협에 갖다주면 추석 전 일은 끝난다.

이제 추석이나 보내고 남은 포도 한 차례 주문받아 작업하면 일은 끝이고

금요일쯤은 서울로 날아서 류모씨의 판화전을 보고, 촛불 사진전을 보고, 장인 포도장사 하니라고

주말도 없이 포도 배달하러 다닌다는 金씨를 만나 <두주불사>한다는 내 술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그려,

화근내나게 살아낸 여름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