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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황금횃대 2009. 3. 2. 21:35

 

 

 

뜨신 방에 있다가 나가면 바깥이 추운지 잘 모른다.

등때기 땀이 찔찔 나도록 아침 청소며 빨래에 후닥닥 거리다 시간이 되어서 집을 나섰다.

훈훈 봄바람? 아놔...오토바이 타고 내달리는 국도의 바람은 어찌나 매서운지 무릎 담요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걸 천만번 후회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발목양말을 신었더니 바짓가랭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발목을 휘감아 마치 발목아지에 얼음 알갱이를 올려 놓은 듯 아리며 시리다. 여태 내복 안 입고 살았는데 해동 무렵에 얼어터지게 생겼다.

 

간신히 상독골에 도착하여 미지근한 마룻장에 깔아 놓은 요대기 밑으로 발을 집어 넣고 손가락을 고물고물 움직이며 녹이고서야 몸이 좀 편안해진다. 오토바이로 한 이십오분 되는 거리인데 어금니를 어찌나 꽉 깨물었던지 지난 겨울 해 넣었던 의치가 욱신거린다. 좀 단단히 챙겨나오지 못한 제 준비성을 탓하지 않고, 살짝 까칠해진 봄바람에게 대앱따 욕 한바가지 안긴다. 떠그럴..육실허게 춥네.

 

서송원 이금연씨는 배농사를 짓고, 사과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고 곶감을 깎아서 조금씩 판다. 올해는 할무이가 다리가 아파서 돼지농사도 걷어치웠다. 지난 설 명절 고기를 사러 하나로 마트에서 뵈었을 땐 할무이 아픈 것 때문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셨다. 그런 노인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평생 땅을 갈고, 이날 이때까지 땅만 바라보고 산다. 그러다 한 쪽이 고장이 난 것이다. 살갑게 거들어 주던 옆지기의 골병은 믿었던 삶을 흔든다. 아끼며 바라보고, 이제는 도사가 다 됐는데도 돼지농사를 작파한 것이다. 배나무 전지 하는 사진을 찍어서 아저씨 블로그에 올리는 연습을 한다. 이왕이면 직접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 보입시더~하며 내가 권하니 아저씨는 장화를 챙겨 신으시고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끌고 나와 영감님 잠바를 챙겨준다

"날씨가 찹구만...이거 입고 가요~"

밭이래야 집에서 몇 발자욱만 안 가면 배밭, 사과밭이 만파장 펼쳐져 있는데 아저씨는 전정가위까지 찾아 나와 배나무 가지를 붙잡고 포즈를 취하신다. 농사꾼은 부러 감정 잡고 연출하지 않아도 가지만 하나 처억 늘려 잡으면 저절로 오래된 폼이 나온다. 사진을 찍어서 ALsee에서 사진 크기 줄이는 법을 알려 드리고 블로그에 사진 업로드를 연습을 한다.

 

할머니가 옆에서 보더니 "아이고 엉겹결에 찍어도 선명하게 잘 나왔데이~"하신다. 날씨는 쌔꼬무리한게 한껏 심술을 부려도, 팔을 뻗어 배나무가지를 잡고 있는 할아버지는 늠름하게 사진이 잘 나왔다. 뭐니뭐니해도 내 식구가 세상에서 젤 잘 생긴벱이다.

 

하루 세끼 밥 해먹고 설거지물 채 마르기도 전에 면사무소가서 동네일을 보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독골 갔다가 한 시간 컴퓨터 갈채주고 또 집으로 와서 점심 챙겨 드리고 나른하게 한 시간 앉았다가 서송원 가려고 마악 나가는 참에 들어오는 서방 점심 또 채려주고, 서송원가서 두 집 교육에 서너시간 떠들고 나니까 나중에는 목소리가 갈라진다. 거기다 어제 짚 묶느라 쌩으로 힘을 썼더니 몸이 구석구석 결리고 아프다. 어이고...신간이 고단하다 요즘같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