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신고 딱지를 붙여놓고 오늘은 여차하면 시간봐서 김천 하이마트에라도 다녀 올 요량이였다.
컴이 시르륵 그 명을 다 했다. 갑자기, 찌지직 화면 한번 찌그리지 않고, 돌아가는 모터에 가래 쿨럭이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렇게 맛탱이가 가 버린 거다. 자슥놈들은 내가 마지막을 컴을 썼으니 사망 원인 제공자는 엄마라고 책임을 지라고 저녁마다 성화다. 지기럴..삼월에는 내가 엥간흐면 매일 여기다 글을 쓰겠다고 입방정을 떨었더니 사년 묵은 여우같은 컴이 미리 엄살을 앓다가 그만 죽어버린거라 생각했다.
옥포동 상현이삼촌이 와서 죽은 컴의 옷을 벗기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장을 뺐다 꽂았다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이상한 신호체계만 줄줄이 주워섬기다 말았다. 할 수 없이 폐기처분 하기 위해 웃목에 밀어 놓았는데 딸년은 지 사진이 다 날라갔다고 날 보면 바가지를 득득 긁어쌌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년은 죽으면서 모든 것을 제 품에 품고 꼴까닥 숨이 넘어 갔는걸..
닷새쯤, 죽은 컴을 웃목에 밀어 놓고는 우리는 오랜만에 티비앞에서 혹은 마루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엔 새로 사온 감나무 묘목을 심고, 물을 퍼서 나무에다 부어 주었다. 컴퓨터 없이 며칠을 산다는게 답답한 노릇이지만 하루하루 그것도 내공이 쌓이는 일이라 죽을 만큼 심심하지는 않았다.
컴맹인 고스방도 아내의 유혹을 다운 받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빨리 어떻게 살려내던지 아니면 하나 사오던지 해야할거 아니냐고 나를 볶았다. 내가 뭔 돈이 있어? 있잖아 이장 봉급.
어이구, 이장 봉급 이십만원에 할 것은 엥간히도 많다. 느그들 책 사줘야지 한 번씩 외식해야지, 옷 사줘야지 인강 끊어줘야 하지...참말로 이놈의 인생은 왜이리 적자투성이냐. 그런데 아이들 과제를 하자면 영 없어서도 될 일이 아니다. 아들놈은 인강 다운을 받아야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오늘 오후에나 김천 나가서 어떻게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할까부다..하며 마지막 심정으로 파워스위치를 넣으니, 어랏, 마술에 풀린 듯 컴이 삐비빅 반응음을 내더니 촤르르륵 부팅되는 소리가 난다. 그러다 마우스 설정이 안 됐다며 꼼짝을 않는다. 키보드로 마우스 설정을 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하이고 이런 고마울 때가 컴이 살아나고 있다. 의식이 돌아온다. 윈도 xp가 화면에 나타나고 푸른 막대가 껄끄럽게 진행이 되고 있다. 그래, 힘내 이년아, 사년을 동고동락 했으니 너도 정이란게 있을거아녀. 그렇게 뜬금없이 목숨줄 놓아 버리는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 조금만 힘을 내라 조금만!..나는 부팅되는 컴을 향해 속으로 이렇게 응원을 보낸다. 내 응원 소리를 들었는지 컴은 푸른색 막대기를 쭈왁 밀어내더니 눈에 익고 귀에 익숙한 시작음을 알리며 윈도 바탕화면을 한 자락 촥, 펼쳐 놓는다. 어이구 이렇게 반가울 수가. 돌아가신 시할아버지가 다시 오신 것보다 더 반가우이.^^
죽었다 살아난 내 컴퓨터. 비록 중국산 껍데기에 꼴아터진 삼성시디롬 악세사리며 벌써 두 구멍은 먹통이 된 유에스비 출입구까지...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지만 사지에서 돌아 온 너는 장하다. 암, 장하고 말고.
오랜만에 내 블로그에다 토닥토닥 글자를 입력하는 나는 낮시간의 고단함을 잊고 입가에 함뿍 웃음을 매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