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꽃지고 골담초꽃이 피어나고, 거기다 봄비도 촉촉 내렸다.
몸은 왔다리갔다리 하면서도 마음은 뒷산에 가있다.
비가 오면 고사리대 올라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설거지를 서둘러하고 행장을 챙겨 고사리 끊으러 부개동골짜기로 간다
작년, 제작년 산판으로 빽빽하던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들은 여배우 등파인 드레스처럼
훤하게 등짝을 내보이고 있다. 섹쉬하지 않는 황토가 드러나고 올고사리들이 이미 나이가 먹어
땅 우에 머리를 내밀자 바로 잎을 활짝 펴 버린다.
그러지 마란 말이야, 머리를 풀어 팔이며 어깨며 다 드러내지 말고 그냥 꼿꼿하니 틀어올린 머리에
다리만 길게 뽑아내란 말이지.
쇠어버린 고사리의 여린 순대기만 쥐어뜯어 나간다
그러다 이제 겨우 땅 속에서 머리를 내밀로 눈도 겨우 뜬 고사리를 발견한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만 컷어도 아뭇소리 않고 끊어 내겠는데..
그러자 웃등성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아저씨가 나보다 먼저 와서 일차 고사리밭을 더텄다.이룬..한 발 늦었군
그러면 마음은 더 급하다. 눈만 빼시시 뜬 저것을 내일 뜯으러 오면 손가락 두 매디만큼은 올라올 터인데
저 아저씨도 그걸 알겠지. 에잉, 고만 후벼파내서 그걸 끊어낸다.
그렇게 이골짝 저골짝을 헤매다니며 고사리를 끊는다.
그러다 퍼뜩 생각에, 누가 끊어 먹어도 내 동네 사람 혹은 황간 사람, 혹은 내나라 사람이 끊어 먹을 것인데
고만 조금 더 크게, 하루만 더 크게 놓아두자. 방금 내려가 아저씨가 나처럼 이렇게 씨알도 안 남기고 호비파갔으면 오늘 아침 내가 고사리를 한오큼이나 꺾었겠냔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바쁜마음도 조급한 마음도 사라졌다. 앞으로 고사리는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필 때까지 올라
올 터이고, 나는 시남시남 넘이 흘리고 간 것, 그리고 내가 산에 올랐을 때 딱 맞게 키가 커 준 것을 끊으면 되지.
집에 돌아와 신발 속에 흙을 털어낸다. 고사리를 삶아 채반에 널어 장꽝에 내다 놓는다.
삶긴 고사리는 봄바람에 가차없이 수분을 말려 갈게고, 산 속 고사리는 시시각각 머리를 내밀며 눈을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