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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황금횃대 2009. 6. 16. 21:40

저녁 차려드리고는 매일 밭에 가요

감나무는 이제 쑥쑥 자라서 반들반들한 잎옷을 많이도 걸쳤어요

봄에 갈아 놓은 도라지씨는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하게 자랐는데 풀들은 광속으로 자라요

담배잎상추는 클대로 커서 잎사귀 하나가 배추잎만해요

상추 두 포기 뽑아가면 하루종일 먹고도 남는데요, 고스방은 상추에 쌈장 얹으면서 고기가 없다고 젓가락끝을 쪽쪽 빨면서 아쉬워해요. 고기 먹을라믄 돈을 줘요 내가 사다줄팅게.

없는 줄 알면서도 그런다고 눙깔을 부라려요. 에이, 내가 한 근 끊어다 구워주고 싶은데 나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ㅎㅎㅎ

작년에는 들깨모를 어찌나 많이 부었던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뽑아 쓰고도 남았는데, 올해는 콩모를 그렇게 많이 부었세요. 몇 집이나 나눠써도 되겠어요

어제도, 오늘도 고스방은 저녁을 먹고 여편네 밭에 가는데 따라 붙어서는 괜히 일을 거들어줘요.

내가 땅을 호미로 파고 젖은 흙이 묻은 콩모를 파놓은 구멍구멍 마다 세포기씩 나눠서 심어요

그러고는 또 물조루로 물을 두 대지비만큼 부어줘야 콩이 안 마르고 살아나거등요. 근데 그걸 혼자하다가

어제, 오늘은 고스방이 따라 붙어서는 이런저런 얘길 하며 물을 부어줘요.

이야기래야 맨날 재미없는 상순이 흉보기가 주내용이지만 이 보리숭년에 물 부어주는 것도 고맙다며 뭔 말을해도 헤실헤실 웃으며 받아줘요. 그럼 저는 뭐 대단한 일이라도 거들어 주는냥 거드름을 피우며 더욱 상순이 흉보기에 바쁜데...그러다 내가 한 마디 쥐어박아줘요/

"어따, 무슨 남자가 일하믄서 저리 지끼쌌는디야'

~~~디야...라고 말할 때 끝부문에 가서 조금 길게 빼며 말을 바닥으로 착, 내려놔요. 그럼 고스방왈,

"야이 여편네야 이건 지끼는게 아니구 추임새야 추임새.."

속으로

'어이고, 추임새 좋아허시네. 마누래 흉보고 놀리는게 무슨 추임새야 어러주글..'

 

한 삼십분 거들다가 고스방은 자기 구두가 흙먼지에 똥구두가 다 됐다고 구두와 바짓가랭이를 탁탁 털고는 내려가요. 작은 산을 개간해서 만든 콩밭은 이제 어둠이 잔잔히 깔려요. 나는 혼자서 흙파고, 고랑 만들고, 풀뽑고 콩 심고, 물주고, 파묻고...북 치고 장구 치고 깽메구 두두드리고, 상모 돌리고..혼자서 다합니다. 무릎이 삐걱삐걱 아프기도 하고 허리가 욱신거리기도 하죠.

 

아랫밭으로 내려와 뒷짐을 지고는 고추가 얼마만큼 컸나, 팥 싹은 올라왔나, 옥수수는 잘 크나, 근데는 좀 통통해졌나, 서리태콩은 땅내를 맡았나 어쨌나..저쨌나..하며 그들에게 말을 걸며서 내 영지를 한 바쿠 돌아요.

돼지감자도 잘 자라고, 전구지도 물론이고 토마토에 가지도  옮겨 심은 땅에 적응을 하려고 떡잎 몇잎 만들어가면서 몸을 세우고 있어요.여엉차..

 

집에 와서는 엽서에 꽃그림을 그리고 오랜만에 연필로 글자를 써요

방바닥에 배깔고 누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