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눙깔을 가늘게 뜨고

황금횃대 2010. 1. 19. 21:38

 

 

 

 

 

 

서울 사는 선배가 고인돌 출판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연말에 세밀화 그림책을 보내왔어요

보리출판사 세밀화를 그렸던 이태수씨의 그림책입니다.

<숲 속 그늘 자리>라는 세밀화 그림책인데, 책을 열어 들여다보면, 아니아니 앞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찔레 한 가쟁이만 봐도 나는 놀래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아요

오늘 부터 비록 그림을 따라 그려 보는 것이지만 하루에 한 장씩 그리기로 했습니다.

김천 사는 아지매가 달력 받았다고 샛노란 이쁜 종이를 엄청 많이 보냈습니다.

또 그림 그릴 도구인 연필은 부산 사는 아지매가 오래 붙잡고 있어도 손가락이

피곤하지 않는 세모 연필을 보냈어요. 독일젭니다. 스테들러라고..ㅎㅎ

 

자동 연필깎기있지요? 구멍에 넣어 돌리기만 하면 기막힌 예각을 깎아내는 집모양의 연필깎기.

이것도 예전에 애인이 사서 갖다 준 것입니다.

뭐 갖고 싶은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가? 아니면 내가 사달라고 졸랐던가? ㅎㅎ

하여간 그 때 장만한 연필깎기를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보석, 모피옷 사달라는 애인은 관리하기 힘들지만

연필깎기 정도는 애교라고 넘어갑시다.

 

내가 푸르스름한 집 모양의 연필깎기 구멍에 연필을 집어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꼭 목공예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목공예 하자면 연장을 쓰잖여..

연필을 꺼내서 눈 높이로 쳐들고는 가늘게 벼려진 연필심에 붙어 있는 흑연가루를 훅`하고 불어요

그렇게 하면서 눙깔을 가늘게 뜨고 굵기를 가늠하지요

그걸 하지 않고 그냥 연필을 종이 우에 갖다대면 첫 대면에 연필촉의 예리한 그 부분이 빠직,하고 부서져요

연필 깎아서 종이에 갖다 댈때의 그 까슬한 각을 즐기려고 애써 손잡이를 피댓줄 돌리듯 돌렸는데

첫 심(힘)에 고게 부서지면 김새요. 피식~~~

 

각설하고

찔레나무 가시를 삐죽빼죽 점 찍어 삐쳐나가는데 핸드폰에서 "다섯시"하고 시간을 알려줍니다

천하 없어도 저녁하러 일어 나야해요

이건 생계형이 아니고 여가형이라서 항상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걸 마무리하고 싶어 나는 손이 근질근질하고

은근히 이 시간에 저녁밥을 꼭 준비해야하는 내 환경에게 눈을 흘겨요

그러나 막상 앞치마 목에 걸고 뒤로 손 돌려 앞치마 허리끈을 질끈 묶는 순간

나는 싱크대앞에 선 전사가 됩니다.

고스방에 낮에 사다준 들깻잎 순을 데치고 양파를 볶아 들기름을 넣어 그 둘을 들들 볶아 놓고

사흘째 소금끼를 빼고 있는 해파리를 건져서 물기를 짤아놓고

잰 손을 놀려 양상추와 배, 미나리, 홍고추, 맛살을 잘게 채썰어 놓습니다

그리고는 퍼뜩 겨자가루 내서 물에 개 보온 밥통 안에 꺼꾸로 엎어 놓고

ㅎㅎ 일사천리로 반찬 만드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그 사이에 꽁치통조림 하나 따서 무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청양고추, 양파, 새송이 썰어서 넣고는

부글부글 끓여요. 고스방이 꽁치 생물조림보다 통조림을 디게 좋아해서.

그렇게 저녁 준비하고 채려내놓고는 병조한테 다 드시면 좀 치워줘 부탁하고 계모임 가려는데

저녁 다 먹은 고스방이 기어이 못가게 붙잡습니다.

내가 계모임 하는 식당에 태워 줄테니 상 다 치우고 가라고.

할 수 없이 기다렸다가 상치우고 설거지해놓고 나오니 조금 늦었세요

 

띠동갑 친구인 영신이가 갈비집을 개업했습니다.

이 나이에 갈비집 개업이라니..나는 엄두가 안 나는데 그녀는 결심을 하고 일을 시작햇어요

영신이는 원래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잘 할겁니다.

성격도 찬찬하니 꼼꼼해서

 

개업빨 받아서 손님은 많데요

영신이가 퍼뜩 새로운 일에 적응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구어진 갈비살을 연신 입으로 끌어 넣으며 빌었재요

 

아침에 귀신 떡당새기 같은 내 책상을 정리했어요

책은 책대로, 파일은 파일대로, 봉투, 편지, 종이, 가계부에 일기장....고3 아들보다 내 책상 우에가 더 어지러웠어요. 거기다 바느질 소쿠리까지.

 

싸악 정리 하고 앉을뱅이 책상 앞에 앉으니 공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일본어 기초 과정이란 책이 돌아다니기에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외웠어요

인터넷으로 배우는 방법도 있을거라 생각하고 찾아봐야 겠습니다.

 

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하며 조잘거리니까

고스방이 시끄럽다고 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