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에 환장하는 농사꾼

5월의 편린들..

황금횃대 2010. 5. 31. 22:52

초 하룻날

 

...부터 상마산리 회관 신축 도면에 대한 마을 회의가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실내에 두 개 넣어야 된다는 의견과 바깥 화장실 하나 넣고 실내에는 하나만 넣으라는 의견으로 갈려서 회관 천정이 시끄럽도록 괌을 질러대다가 그 날 회의는 끝이 났다.

그 다음에 날 잡아서 평면도를 달력에 크게 그려가지고 갔더니 이번에는 뒤안에 옛날식 불 때는 아궁이가 반드시 있어야한다고 부녀회에서 강력히 주장했다. 그 공간을 부엌 뒤에 마련하자니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의견을 설계사무실 황실장에게 말했더니 예쁘장하게 생긴 황실장을 곱슬머리를 쓸어 올리며 "허, 그거참, 허, 그거 참"을 연발했다. 그거 참은 화장실에 갖다 내삐리고 불 때는 아궁이 <반다시>설계에 넣고 아궁이 옆에 수돗간 하나 네모지게 만들어주세요 했다.

오월 열 이렛날, 수정에 수정, 덧칠에 규모 조절까지...합의를 본 달력 도면이 다시 설계사무실로 건네졌다.

요대로 설계 빼주세요. 실땅님^^

 

초 닷샛날.

...오일은 친정 엄마 생신이라. 그 전날 대구에 갔다. 올뱅이를 사들고, 떡당새기를 이고 지고 하며 친정 동네를 갔다. 아부지는 다리가 자주 아프시다하고 엄마는 별일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올망졸망 조카들은 새카맣게 타서 얼굴이 반들반들하다. 막내 태환이가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세 번이나 일등해서 Wii라는 게임기를 사들였다. 동생이 땀을 뻘뻘흘리며 기기를 연결하고  떡을 먹으며 우리는 바라봤다. 아이들은 아빠의 손끝따라 눈동자가 움직이고 드디어 벽티비에 Wii가 연결이 되었다. 아바타를 만들고 처음으로 균형게임을 하였는데 내 균형감각은 65세였다. 그렇지, 자주 넘어지는 이유가 있었어 예순 다섯씩이나 먹었다잖어. 게임기는 부지런히 연습하면 나이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설정된 멋진 남자 트레이너 아바타가 격려의 말까지 남긴다. 티비와 Wii, 프로그램 시디만 있으면 석달 열흘 바깥과 소통하지 않아도 무료하진 않겠다. 이런 걸 보고 세상 살기 좋아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초 여드렛날.

...이제 황간체육회에서는 매년 오월 팔일을  면민화합체육대회의 날로 정했단다. 이장들은 뒤로 불만을 토해냈지만 존기 좋다는 대원칙을 거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 전날 장을 보고  민속게임 선수를 선발하고 어버이날 행사 유사 맡은 이들이 쑥을 낫으로 베어왔다. 종일 동네 아지매들과 쑥을 다듬고 반찬거리와 국거리를 장만한다. 새벽에 일어나 회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돼지고기 스무근을 삶아 놓고 아침을 준비하러 가니 고스방은 밥을 자기가 차려먹고 나가며 나를 째려본다. 아침이나 챙기주고 나가야지 거기서 그카면 누가 아침 채리주냐고.

이런 날은 채리줄 사람 없어. 지지마꾸 지가 채리묵어야지 라는 항변을 삼킨다.

 

열 나흗날,

시할머니 기일이다. 아침부터 동네 공사 신청한게 한꺼번에 들어왔다. 하수도 복개공사, 도로 포장공사, 수미네 잔치음식 준비까지.

하루 종일 내 발이 얼마만큼 돌아 다녔는지 알 수가 없다. 업자들은 조금도 민원사항이 발생되지 않으려고 퍼뜩하면 전화다 이장님, 이장님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그 때마다 나가서 현장 확인을 한다. 저녁 아홉시가 지나도 동서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제사인줄도 몰랐는지 깜짝 놀라는 목소리로 지금 간다고 얘기한다. 제엔장, 이젠 제사가 있는 날인지 없는 날인지 그거조차 희미해졌단 말인가. 돈 벌로 다니면 다냐? 하는 항변이 또 목구멍에 튀어 오른다. 제사를 지내고 하루종일 동당거리며 음식 장만한 나 한테는 음복 술 한 잔 조차 건네지 않는다. 속이 상해서 밥을 비벼 먹든 탕국에 말아 먹든 내 몰라라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들 먹고 동서가 치우는 소리가 듣긴다. 어머님은 또 음식 싸 주는 일에 마음이 급한가 이것저것 넣으라는 소리가 듣긴다. 그래도 나는 모른 척 하고 잠을 청했다.

 

열 다샛날

목기를 닦아서 함에 담아 놓고, 음식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잔치집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집구석을 나오면 골목 채 벗어나기전에 집에 일을 잊자]가 내 신조다.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는 그 구석 일들.

서울에서 블로거 원이님을 예식장 앞에서 만났다. 며칠 전에 영동에서 우연히 원이님을 만났다. 사진으로 얼굴 한 번 본것 뿐인데 그녀의 미모는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어서 알아 보는게 가능했다. 그 날도 우리는 장백폭포같은 수다의 물줄기를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원이님 차를 타고 일원동 삼성병원에 들러 아침에 급하게 구워온 김치 부침개를 양샘 병실에 갖다 주었다. 빈대떡과 김치부침개를 먹으면 병이 나을거 같은데 그걸 먹을 길이 없다고 양샘의 전화가 왔다. 가까운 거리 같으면 내가 만들어 갖다 주기라도 한다지만 그게 아니다. 다행이 일요일까지 양샘은 참아 주었고 썽그렇게 식은 김치부침이를 양샘 앞에 내밀었다. 맛있다고 먹어주던 양샘.

 

분당에 가서는 쿨와이즈님을 보고 왔다. 온라인의 경계를 넘어 오프로 가는 길.

거기서 점심에 차 한 잔 간단히 마시고 예식장 차를 타가 위해 전력 질주를 하였다. 질주 본능과는 다르게 원이님의 길감각은 글쎄요. 나들목을 놓치는 바람에 한 바퀴 삐~~~잉 돌아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잔치집 버스는 이미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이장 태워가야 한다며 뭐라뭐라 했을겨. 그러나 보라, 서울 살이가 그렇게 만만하던가. 십분을 더 있으려해도 도로사정이 급하니 있을 수가 없다. 촌에는 하루 종일 세워놔도 암말 안한다.

 

열 여샛날 부터

...고구마 심기가 시작되었다. 고구마를 심고, 고추를 심고, 콩 모를 부어 놓고, 참깨 씨를 넣고, 검정 콩을 심고 땅콩을 심었다. 볕은 뜨거워도 바람이 설렁설렁 불었다. 저녁이면 춥고, 아침에 찬물에 손을 넣으면 손이 시리다. 시절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가늠이 안된다.  

 

스무날,

삼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연휴가 시작되는 시간에 우린 인천으로 향했다. 큰시숙의 기일이다. 매번 봉고차를 빌려 대 부대가 이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단촐하니 다섯명만 갔다. 옥천 조금 지나자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고스방은 똥줄이 탄다. 도대체가 막히는 구간이 아닌데 왜이런지 모르겠다고 하며 궁시렁이다. 이러다 제사 지내는 시간 안에 인천까지 갈 수나 있을려는지 모르겠다며, 지금부터 이렇게 막히면 저 위쪽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거란 시동생 말에 어쨌던 이구간을 벗어나보고 기차를 타고 갈 것인지 결정을 하자고 했다. 한참을 올라가는 정체 원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차선 변경을 하라는 화살표 방향의 깜박이 불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고스방의 입에는 험한 욕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이 씨발놈의 시키들이 뭔 정신으로 삼일 연휴 시작하는데 공사를 하는지, 도대체 정신이 있는건지 모르겠다"면서 1절이 시작되었다. 밀려서 가는 길, 길 가에 사람은 없고 빈차만 공간 확보를 위해 한 차선을 점령하고 세워두었다. 마침 흔들거리는 깃발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스방은 옳타구나 싶어 조수석 창문 까지 내려서 욕 한 바탕 내지를려고 다가 갔는데 어랍쇼? 깃발을 흔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로보트다. 김이 팍, 샌 고스방 다시 창문을 올리면서 "제엔장, 사람이 아니자나 씨발놈들은 다 어디갔어?"하고 2절을 한다.. 듣다 듣다 내가 한 마디 했다

"여보, 이제부터 욕은 내가 할게요. 당신은 그저 고상하게 운전이나 해도. 험한 욕 같은건 내가 할테니 알았지요"

 

고스방이 날  뻐히 쳐다본다. 여편네가 무슨 욕을 할 줄 안다고 저런 소릴 하나 싶어서 ..."니가 무슨 욕을 해."하길래, 내가 욕을 한 자락 해 볼테니 당신은 듣고만 있어요.

서며 가며 차는 천천히 움직인다. 또 차선 변경을 알리는 화살표 차가 서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창문을 내리고 대가리를 창문 밖으로 빼서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이, 조~~오까튼 놈아~~"  물론 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설마하니 욕을 할까 했는데 내 입에서 고래괌으로 욕설이 터져나오자 고스방의 눙깔은 동공까지 활짝열렸다.

내 팔을 잡아 끌며 됐다 고마해라 한다. ㅎㅎㅎㅎ 나도 1절로 끝낼 수야 없지.

 

"여보, 나훈아 하고 김지미 하고 왜 헤어졌는지 알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는 눈치다.

"있잖아, 어느 비오는 날 저녁이였어. 나훈아하고 김지미하고 서로의 거시기를 발가락으로 간지래다가 나훈아가 김지미한테 물었어. <이건 누구 바알?>하고 그러니 김지미가 <훈아씨 발~~>하고 콧소리 섞어가며 대답을 해찌, 조금 뒤에 김지미가 물었어 <자기야 이건 누구 발?> 하니 나훈아가 대답을 해야 되잖아 그런데 나훈아가 경상도 억양이 좀 쎄서  <지이미 씨발~>이랬데.  아, 이 말을 듣고 김지미가 와 내게 씨발이라 카노! 하며 발끈해서 둘이 싸우다고 고만 이혼을 했다네.

에이 그걸리가? 라구. 사람 일을 어떻게 알어 특히 남녀간의 일은 더더군다나.

 

스무 이튿날,

....은, 여고동창생들과 일박 이일로 무주구천동을 다녀왔다.  비가 솨~~~~~~~~~~~아 내리는 무주길,

베스트 드라이버 지희가 운전하는 앞차와 무조건 앞차 뒤만 따라 오는 운전연수생 미홍이의 마티즈가 그림같은 길을 밟았다. 비는 그 다음날까지 줄기차게 내렸고, 우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들어 갈 때 현관문 한 번 통과하고 짐싸서 사올 때 또 한 번 현관문을 통과했다. 팬션 부엌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과 소주  두 병.

천태산 영국사에 들렀다  오래된 은행 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고, 샌들 끈이 떨어진 춘수 발에 노끈을 주워 묶었다. 훗날 두고두고 우려 먹을 기막힌 추억들.

 

 

 

그리고 마지막 주말.

동호회에서 농활을 왔다. 하루에 한 골 하면 녹초가 되는 포도밭 일을 여섯골이나 훑어 주고 갔다.

안 하다 하는 일이니 몸살이 날 터인데 그래도 늦도록 일을 해주고 씻도 않고 집으로 갔다.

그들이 돌아나가는 길모롱이에 나는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왈칵 뜨거운게 목젖으로 올라 온다.

화근내 나는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