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열심히 쓸때엔 널린게 편지지더만
그런 것들이 멀어진 요즘에는 뭘 쓸래도 표정도 색도 없는
A4용지만 있네. 책꽂이 구석구석 뒤져서 찾아낸 이 종이.
합정동 <문턱없는 밥집>옆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팔던 이 종이 밖에 없어. 작년 유월이던가? 수정테이프
찔끔찔끔 붙이고 꽃그림 그려 찔레꽃이라고 우기던.
그 종이.
며칠 전 서울갔을 때 상계동 좁은 빌라에 문을 열고 들어갔지
해는 졌는데 식구들 기척이라곤 아모데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집.
딸네와 살림을 합쳤다고 형님 방이라며 알려 준 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숨이 턱 막히네. 연초에 고스방이 아들놈 하숙방에
짐 놓고 방 둘러보더니 방이 작아 아들놈 숨막힐까바 사흘을
울더니만, 즈그 누나 방을 봤으면 또 한번 목이 메였으리라.
형님이 자던 방 머리맡이라 일러주는 곳에<사자밥>을 차리네.
공기밥 세 그릇 우에 십원 짜리 세 개를 노잣돈으로 얹고,
술 석 잔 그것도 탁배기로. 삼색 나물 한 접시에 삼베로 한 벌 감은
허새비를 놓고, 종이 한복 한 벌도 같이 놓고, 형님의 체취인냥
병원 중환자 면회시간에 간호사 눈치보며 잘라 온 머리카락과
손톱도 조심스레 놓구선 경을 읽는다
신묘장구 대다라니, 천지팔양신주경, 반야심경..조카딸과 내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운율도 설 익은 경을 읽는다.
그렇게 의식이 끝나고 저린 발을 주무르며 부적을 태우지
화르락, 순식간에 타올라 오는 부적.
오늘 낮에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숙모, 엄마가 눈을 떴어요!"
형님은 칠일 만에 겨우 눈을 떴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가
영동할아버지는 몇 년전에도 어머님을 사자의 손아귀에서
빼냈다. 시엄니의 머리 우에 저승사자가 내려다보고
있으니 급하게 사자밥을 물리라고 얘기했고
그렇게 하고 난 뒤 어머님은 지금까지 괜찮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나는 신기하기도 하지.
이번에도 형님이 아모 일 없었다는 듯 한숨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멀쩡하게 의식이 돌아 온다면 나는 겁이 좀
날 것 같어. 사람이 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종일 끈끈이 습기 속에서 밍그적거리다가 전화를 받네.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다는 배려에
나는그랬네, 사람이 서로 안다는 건 무얼까. 그저
얼굴만 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그. 안. 다. 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