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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황금횃대 2010. 9. 6. 20:23

나를 만나거든



땀 마른 얼굴에
소금이 싸락싸락 돋힌 나를
공사장 가까운 숲속에서 만나거든
내 손을 쥐지 말라

만약 내 손을 쥐더라도
옛처럼 네손처럼 부드럽지못한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주름 잡힌 이마에
석고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마디도
나의 침묵에 침입하지 말아다오

폐인인 양 시들어져
턱을 고이고 앉은 나를
어둑한 廢家의 회랑에서 만나거든
울지 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평범한 표정을 힘써 지켜야겠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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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시작하여 여름 내도록 농사지은 이장 시사답 포도밭을 장사꾼에게 넘겼네

비가 자꾸 오니 포도가 터졌다며 장사꾼은 지불해야 할 돈의 1/8을 또 깍자고 덤빈다

너도 살아야하고 나도 살아야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은 한곳이다.

다 같이 살아야한다는 것.

 

장대비가 내리는데 상인들은 일꾼을 들여 포도를 따고 있다.

홈빡젖은 그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일을 한다

처절한 삶, 측은한 삶, 차마 못하는 마음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다져져서 나는 나를 조금 내려놓고

그들도 그들을 조금 내려놓고.

이렇게 일년 농사의 가시적 계산이 끝났다.

내일부터는 농협 외상값을 갚고

그동안 얻어 먹기만 한 꽃샘에게 밥도 한 끼 사고

우리 식구들, 무엇보다 방학 내도록 포도 알 솎기에 농약 줄 잡아 주느라고 고생한 보리껍데기 울 아덜놈.

새벽 잠을 줄여가며 예초기로 풀을 깎아 준 고스방.

그들의 통장에 기십만원의 돈을 차례로 이체시키면서

이렇게라도 그들의 고마움에 갚음할 수 있어 차암 좋다..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카페 중고 장터에 나온

이두호의 임꺽정 만화책 열권 대금을 어린이 재단 후원금으로 지불하면 책을 보내주겠다는

신수동에 사는 어떤 사람의 넉넉한 마음도 느껴본다

돈 만원 이체시키면서

소름끼치는 그의 만화, 임꺽정을 또 읽어보겠다 싶어

봄부터 초가을, 이날 까지의 노동이

그냥 쓰다듬을만한 크기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