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궁상

종일..

황금횃대 2011. 1. 1. 22:51

1.

 

"야이 여편네야 저기 빨아 놓은 빤스 좀 봐바"

"목포 언니가 사 준 꽃무늬 빤스 말이예요? 왜요?"

"그거 앞에 우째 됐나 함 바바"

빨래 개어 놓은 무데기에서 고스방의 빤스를 찾는다.

목포 언니가 한참 전에 내한테 선물을 보내며 고스방 속옷을 사서 보냈는데

무늬가 꽃무늬라 첨에는 이런 빤스를 우예입노 하더니 나중에는 그거만 입었다.

 

"내참, 오줌 누면서 보니 뭐가 허연기 보여 이기 뭔가 싶어보니... 아이고 이핀네야 빤스 앞에가 다 떨어졌어"

"오래 입었네. 이젠 버려야겠다"하며 둘둘 뭉치는데 고스방이 버리지 말란다.

 

첨에 그 옷을 입을 때 배 부분이 좀 불편하다며 빤스 사서 보낸 언니의 저의를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목포언니가 말야 이 옷 입을 때 마다 자기 생각하라구 일부러 불편한 이런걸 사보냈나봐"해서 나는 그 날

배를 잡고 뒤집어지게 웃었다. 설마허니 언니가 당신을 그렇게나 생각할라구 ㅋㅋㅋ

 

이젠 그 불편함도 해소가 되어서 자기 몸에 아주 편하게 모양이 바뀌었다나. 떨어진걸 살살 꿰매 보란다.

 

2.

뒷골절 영천사에서 올해는 우짠 일인지 떡국을 한 말씩해서 동네 회관마다 다 돌렸다.

영천사 스님에게 아침 일찍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낮에 회관에서 떡국 낋이 먹을테니 동네 사람들은 떡국 자시러 오세요 하며 방송을 했다.

 

열시 반쯤 회관가서 청소기를 돌리고 보일러 버튼을 눌러 난방을 시작해 놓구는 집으로 와서 정리하고 일전에 사 놓은 두부 한 모를 달랑달랑 들고 열 한시가 넘어 회관에 가니 그제서야 할무이들이 나오신다.

물을 끓이고 노인회장님이 사온 쇠고기 꾸미를 볶고, 파를 썰고 두부를 네모지게 썰어 준비를 해 놓는다.

어머님아버님이 회관에 오시지 않아서 우리집 노인들은 따로 덜어가서 집에서 끓여 차려드리고 회관에 와서 떡국 한 그릇을 맛나게 먹었다.

김도, 계란도 넣지 않는 떡국이지만 여럿이 신문지 깔고 둘러 앉아 김치 보시기에 숟가락 들락날락하며 얻어 먹는 떡국은 욱작북작하는 분위기로 맛을 낸다.

 

맛나게 한 그릇 먹고는 설거지하고 집으로 건너와 그 질로 바느질 당새기를 끌어 댕겨 앉아 바느질을 한다.

 

3.

인천사는 선배님이 딸에게 줄거라며 천생리대를 주문해왔다.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오늘 시작한다.

오후시간을 꼬박 앉아서 만든다. 오며가며 딸래미가 날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찬다. 저 일이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저렇게 앉아서 하는고...

마지막으로 헤진 고스방 빤스를 꺼내서 꼬맨다.

이걸 쉽게 버리지 못하는 고스방도 참 사는게 지지리 궁상이지만, 그걸 꼬매란다고 천을 덧대서 꼬매고 앉은 고스방 여편네도 참말로 지지리궁상이다.

그러나 바늘을 들고 한땀한땀씩 또박또박 꼬매다보면 그 가지런한 간격이며 바느질 선이 한 없이 이쁘다. 삶에 특별한 예술이 별다로 필요한건 아니다. 새로 덧댄 천과 바늘땀, 그리고 원래의 천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공간 차지가 내 눈에는 예술이다 ㅋㅋ

 

 

 

 

 

 

 

이렇게 꼬매면 됐냐고 고스방 저녁 먹으러 왔기에 보여주니 고스방 왈,

"야이 여편네야 천을 그런 색으로 대놔서 누가 보면 보사리감투 나온줄 알겠다" 한다.

젠장, 보사리감투야 뱃속에 들앉았는건데 저기 왜 나와 있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