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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김씨 아줌마

황금횃대 2011. 6. 24. 20:49

 

                                                                                   <넘의 블로거에서 오베옴>

 

 

바야흐로 우리동네에는 포도봉지싸는 계절이 왔다

이틀 전 조씨 아줌마네 포도밭을 기점으로 포도봉지싸기가 시작되었다.

품앗이도 있고 날품을 파는 사람도 있다

조씨아줌마는 내가 짓는 이장 수곡 포도밭 건너편 밭 주인이다

조씨아줌마는 혼자 살면서 천 평 남짓 포도밭을 자식 키우드끼 알뜰 살뜰 보살피며 농사를 지으신다

포도밭에 순을 치거나 알솎기를 하면 하루 날 잡아서 빗자루로 밭은 깨끗하게 쓸어낸다

우리같은 사람은 감히 꿈속에서라도 흉내내기 어려운 농사법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날 아래, 웃동네 일꾼 아줌마들이 앞치마에 포도봉지를 불룩하게 쑤셔 넣고는 무서운 속도로 포도 송이에 하얀 종이 봉투를 씌워 나간다

거기게 조씨 아줌마 동서 되는 김씨 아주마이가 있다.

자기네 포도밭은 일전에 잠깐 쏟아진 우박으로 삽시간에 폐허가 되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쓰다듬으며 지은 농사인데 그리 되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거 울만 뭐하노 죽은 자슥 불알 쓰다듬기지"

만날 때마다 포도가 좀 깨어났는가 싶어 물어 보면 아주마이는 쿨하게 이런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게 얼마나 속쓰린 대답인지를

 

점심을 먹고 어지가히 마지막 골에 달라 붙어  포도 봉질 싸는데 조씨아줌마와 친구지간이기도 한 권씨아저씨가 물었다

"경주 어무이는 언제 혼자가 되얐어?"

"내가 아바이랑 십이년 살고 신랑이 죽었재. 내 나이 서른 너이였을때여"

"아이, 그렇게나 오래 전이여? 그래 그 동안 누가 찝적거리지도 않던?"

"왜 안 찝적거리.. 내가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아이고, 그럼 영 재미없는 시절을 산 건 아니네 그랴"

"남자는 다 아 도둑놈이여, 아이고, 아바이 죽자 얼마 안 있어 잘 밤에 문고리 잡아 땡기는 놈이 있었어"

"누군데??? 좋은 일 해주러 왔나벼 ㅎㅎ"

"누군지 말만 하면 다 알지, 아바이 친구란 놈이 젤 먼저 와서 수작을 걸어 싸"

원래 그렇단다. 과부되면 죽은 남편 친구들이 일 순위로 와서 기별을 한다고

한참을 문고리를 잡아 댕겨도 아무 대꾸가 없으니 이 위인이 집으로 가더란다. 집이래야 멀리 떨어진 집인가? 바로 이웃한 집인데, 그래 돌아가길래 배끝으로 나와서 큰집 형님을 델꼬 그 집으로 갔재

"마누래가 나오길래 다짜고짜 물었지. 집이 신랑 들어왔느냐고. 마누래가 나와서 조금 전에 들어와 잔다고 하네. 흥, 자기는...자는 칙하면서 바깥에 소릴 다 듣고 있었겠지, 신랑 깨우라 그랬어, 깨와가지고 나오길래 내가 그 놈 귀싸대기를 한 대 갈겼어. 신랑 친구가 그래서 되겠냐고, 혹여 내가 다른 사람하고 나쁜 소문이 나면 친구 씩이나 되어가지고 날 보고 타일러야지...아들도 있고 하니 힘들더라도 경주엄마가 참고 살아야지..이런 말은 못할 망정 니놈이 먼저 담을 타 넘고 와?"

 

마누래 있는데서 그런 봉변을 당했으니 그 놈이 잘못했다 하더만. 글쎄 그런 일도 있었다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권씨아자씨,

"어허, 좋은 일 해주러 왔다가 시껍을 했네 그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인생 깨끗하게 지키고 살았네"

"깨끗하긴 제엔장,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 등신그치 살았구만.."

 

 

무엇이 좋은 시절일까...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마산리 동네 과부들 팔짜고친 이야기로 흘러흘러 빗물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