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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1.

황금횃대 2011. 9. 3. 21:37

오늘로써 포도작업 7일째 됩니다

친정 동생 내외와 벌초 때문에 집에 내려가신 아부지까지, 일군이 셋이나 늘었고, 면사무소 알바 나가던 상민이까지 보태서 포도도 많이 따고 손질 작업도 부지런히 힘 안 들이고 했지요.

어제는 혼자 따고 나르고 했더니 손질한다고 찬막 안에 앉으니 온몸의 기운이 어디론가 스스르르 빠져 나간 것 같아 죽을 맛이더만 오늘은 저녁이 되도 팔팔 합니다. 사람 하나의 힘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포도는 익는 놈은 익고 아직 덜 익은 놈은 애타게 사람 속을  끓이며 봉지를 열때마다 어제와 다를바 없는 낯빤데기를 내놓는데 그럴 때도 기운이 빠지곤하지요.

 

작년 연말, 혹은 년초에 연하장을 보내려고 미리 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표까지 붙여 놓았더랬는데 그것도 흐지부지..봉투만 남았습네다.

딸이 먼저 샤워한다기에 나는 책상 정리를 하다가 봉투 꾸러미를 발견! 이렇게 일년에 한번 밖에 보내지 못하는 손글씨로 그대의 안부를 묻습네다. "두루 건강하시고 식구들 모두 평안하신지요..."하고.

 

아침에 빨래 한 다라이를 빨래판 기울여놓고 손빨래로 치댔더니 손목 아래 두툼한 살집이 빨래판에 쓰데여 물집이 잡혔어요. 꼴란 빨래 한 다라이에 손이 몸살하는 꼴이라니.

세탁기 고장나서 새 것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데 온식구 벗어내는 빨래감이 장난 아닙니다. 딸과 함께 빨래를 비틀어 짜면서 [세탁기에게 새삼 감사를]하는 말을 했더니 딸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젠 누가 뭐래도 가을,

밤이면 서정이 이슬처럼 나리는 날들에게 그대는 어떤 일별을 보내시려는지요.

 

                                            2011년 9월 3일         황간에서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