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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닭이 울기 전에

황금횃대 2011. 11. 17. 23:46

올해 마지막 제사이다.

동서는 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몸이 아파 못 가겠노라고 목이 쉰 목소리로 통보를 한다

감기가 단단히 걸렸나보다

작은 엄마 인생도 가마히 보면 참 고달프다 그쟈...하며

동그랑땡을 쿡` 젓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딸래미가 전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그런다

그런거 보면 엄마는 참 잘 살어, 아주 신나게 잘 산단말이야.

고맙다 딸아, 니 눈에 내가 지지리궁상으로 보이지 않고 신명 만땅으로 사는 여편네로 보이니.

 

뿌리깊은 나무 본방 사수하고 다음주 방송 분량 맛뵈기를 해 줄까 싶어 앉은 자리에서 퍼뜩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시청률 올라가면 그런 서비스는 잘라 먹는거라고...그래서 그런지 해 주지 않는다. 에고 일어나 묏밥이나 앉히자.

 

아홉시부터 젯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혼자 해도 되는데 카톡을 하는 딸을 기어이 불러내어 부엌에서 목기에 차린 음식들을 방에 갖다 나르라고 채근한다. 아이고, 상순여사땜에 내가 못살어...하도 고생을 해서 발 뒤꿈치가 다 갈라졌지모야

암맘봐도 재미있는 딸 상민이랑 나는 부침개 꽁다리를 입으로 주워 넣으며 상을 차린다.

"엄마, 부침개 꽁다리도 김밥 꽁다리처럼 맛있네. 은근 김밥 꽁다리삘이 나고 있어 ㅎㅎ"

혼자 외로이 젯상을 차리는 인생은 얼마나 심심 골때리는 시간이겠는가. 손은 움직이고 있을지언정 그 마음 한 켠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부애가 나겠는가.

상에 하루 종일 장만한 음식과 과일을 갖다 놓으니 아버님께서 내려다 보시며 잘 진설이 되었는가 살피신다.

곶감은 있냐... 호두도 가져와야지...

매번 지내는 그것도 지난 주 금요일에도 지냈는데도 나는 한 가지씩 빠트린다. 냉동고에서 곶감을 내고, 호두 까 놓은 것을 작은 목기에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다.

 

묏쌀을 가져와 한번은 박박 치대서 쌀뜨물을 받아 탕국에 쏟아 붓는다. 한번씩 나는 탄식처럼 내뱉기도 한다. 이러다 탕국솥에 빠져 죽겠다고.

이틀 전에는 오늘 제사지내는 증조 할머니를 납골당으로 모시는 이장을 하였다. 고스방은 이장 날짜를 받아놓고 뒷골이 땡긴다고 자주 뒷목을 주물락거렸다. 그걸 해치우고는 "돈은 들었어도 개운하다"하며 샤워를 하고 옷을 싸악 갈아 입었다.

 

눈 뺄간 할마이.

오늘 젯상의 주인공은 아버님의 할머니, 즉 증조 할머니가 되신다. 눈에 늘 핏발이 곤두서 있어서 별명이 대추나무집 노할마이에서 눈뺄간 할마이로 바꼈단다. 눈이 핏물이 고인 것처럼 붉은 날은 거머리를 눈에 붙여다녔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전설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늘상 눈이 핏물이 고여있다가 한 번씩 거머리가 그 피를 빨아먹게 붙여다니는 컨셉.

등골이 오싹한 풍경아닌가. 그러니 그 할머니는 여직 전설로 통한다.

 

배 고픈 시절, 떨어진 감꽃 하나에도 그 위엄을 내질렀다는 할머니

큰형님이 아이가 늦자 베개뭉텡이라도 낳아봐라고 윽박 질렀다는 그 할머니.

 

탕국에 두부를 처서 넣고 간을 본다. 제사 음식은 간을 안 보는 거라 하지만, 뭐 요새야 그게 통하기나 한디?

 

이 시골구석에도 일 년치 제사를 가장 중요한 제삿날에 합쳐서 한 번만에 그 집안 제사를 몰쳐서 지내는 집이 늘고 있다

옛 어른이 들으시면 그런 씨쌍놈의 집구석이 어딧냐고 난리가 날 일이지만 이젠 그게 대세가 되었다. 우리집처럼 첫 닭 울기 전, 열 두시 땡!하면 묏밥 들이는 이런 집이 외려 지탄을 받는다...고루하기는 쯧쯧....하면서.

 

밥이 끓고, 이제 그만 타자를 치고 일어나 수저통을 챙기고, 간장에 깨소금을 갈아 넣고, 나박김치를 한 보시기 떠서 차례상에 묏밥과 같이 들여야지...고봉으로 얹은 나물에도 깨를 뿌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일년에 한 번뿐인 밥상을 받으러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그건 모른다. 그러나, 이 밤길을 밟아 작은집 시동생과 큰딸,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으로...

 

곧 새 날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