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안 계시니 이제 팥죽을 않끓여도 되겠다 했지, 근데 아버님도 팥죽 끓여야지..하시고 고스방은 구체적으로 새알을 많이 넣으라고 주문사항까지 얘기한다. 팥죽 끓일 줄 모른다고 버팅겨도 안되겠다. 설거지하고 팥 한 사발 떠다가 씻어서 푸욱 무르게 삶았다. 몇 번을 뚜껑을 열어보며 팥 알갱이를 손가락으로 문때면서 삶았다. 홍케이가 되도록 무르게 삶아 믹서기에 서너번 나눠서 갈았다. 체에 밭치는 것보다 훨씬 곱게 되었다. 쌀을 씻어 쌀뜨물을 팥앙금만큼 받아 앙금과 섞어서 끓을 때 때낀 쌀을 넣어서 부지리 저어준다. 간간히 쌀을 하나씩 꺼내 입 안에 넣고 씹어 본다. 알맞게 퍼졌을 때 새알옹심이를 넣고 한 번더 후르륵 끓인다. 걸쭉한 팥죽 완성이다. 이렇게 쉬운걸 어머님 계실 땐 왜그리 끓이기 싫어 했을까. 끓이는 내내 어머님과 같이 팥죽 끓였던 동짓날들을 생각한다. 끓이기 싫어 응근히 꼬장부린 몇 몇 장면들을 길어 올린다.
아버님이 팥죽 한 그릇을 다 드신다.
죽 싫어 하던 고스방도 팥죽 한 그릇을 비웠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봐 죽이 다 먹고 싶네"하고 한 마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