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역에서 타는 서울행 8시 57분 새마을 기차를 예매해놓고 아침 준비를 부지런히 한다. 한끼 식사라도 내가 차려 드릴 수 없다면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지 고스방이 암말 안 한다. 서울 잠깐 다녀 오겠다고 얘기하고 저녁 밥 차리기 전까지는 꼭 도착하겠노라 장담을 했다. 그러니까 고스방, 당신은 아버님의 점심 진지만 책임을 좀 져주면 내가 편하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몇번이고 되뇌었다.
아침먹고 치우고 하니 벌써 여덟시 반이다. 정신없이 오카리나 악보와 악기가 든 가방을 방바닥에 쏟아부어 놓고는 거기다 핸드폰과 지갑을 쑤셔놓고 얼음빙판길로 뛰어 나가면 고스방한테 전화를 한다. "여보, 나 좀 영동역까지 태워줘요"
고스방이 쌩하니 달려왔다. 가다가 묵은점 어귀에서 아줌마 한 사람 합승을 했다. 그렇게 나가는 차를 타면 무조건 삼천원이다. 거리요금과 상관없이. 아줌마 목적지에 먼저 내려주고 한바퀴 돌아 영동역 앞에 내려준다. 차비로 만오천원을 주니 이만원이라고 한다. 이만원은 무슨 이만원? 하고 내가 놀래니까 그럼 만 칠천원만 주란다. 이싸람아 원래 가족에게는 이십파센트 할인요금이 적용되는기야. 공장에도 자사 물건 직원들에게 팔 때는 할인해 주걸랑? 하며 만 오천원 기어 대가리 앞에 놓고 내리니 암말 안한다.
가족차라도 이건 영업용이라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게 고스방의 원칙이다. 어떨 땐 서울서 막차타고 영동 내리면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할 때도 있는데 그 때 이용하면 할증요금을 물어야한다. 이건 요대기 비법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부분이다.
장의사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 무어냐고 물으면 <내집 매상은 내가 올리는구나>라던데, 이거야 말로 내집 매상 내가 올리는 경우다. 그래도 고스방은 그 주머니 돈이 이 주머니 돈인데도 좋단다. 그래 좋은대로 사는거지, 그거 만 오천원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서울가서 여자 원을 만나 병문안을 한다. 여자 투와 합석해서 집까지 동행, 커피를 마시고 여자 원이 사온 조각 케익 -달달한- 외로움과 우울을 달래준다는 반질반질 윤이 곁들인 조각커피를 설탕을 투척하지 않는 커피와 마신다. 그리고 집을 나와 여자 원과 나는 서울역을 향해서 여자 투는 병원으로 그렇게 헤어졌다.
길이 막힌다. 홍제사거린지 뭔지 하여간 꼬일대로 꼬인 그 길에서 한참 막혔다. 졸창지간 약속하여 후다닥 만나 일을 보고 미련없이 돌아서는 나에게 여자 원은 시종일관 친절하고 따스하다. 역으로 올라가 자동판매기 앞에서 삑삑삑삑..메뉴를 눌러도 바로 떠나는 기차는 차표 발행을 할 수 없다고 나온다. 발권하지 않고 그냥 무작정 ktx에 올라 출입문 앞 간이 의자에 앉는다. 한 정거장쯤 가니 승무원이 온다. 무임승차 걸리면 요금이 더 많으니 자진 발권한다. 제길 그렇게 자진발권을 했는데도 수수료가 10,000이 넘게 붙는다. 젠장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잖어.
그래도 마음이 급하니 그거라도 탄게 잘 됐다. 잘했다 전상순. 한 시간 후에 대전역에 도착, 심장 쇼크가 일어나도록 뛰어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 20분에 떠나는 시외버스를 탔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에 앉아 있을 5시 20분쯤 고스방의 전화. "니 입으로 저녁 시간 전에 온다 캐놓고 뭣이라? 일곱시에 도착한다꼬?" 날선 목소리....아이구 차가 밀려서 어쩌..뚝! 전화가 끊겼다. 그러니 내가 6시 20분 시외버스를 못 탈까바 ktx안에서 얼마나 뛰었게!
지성이면 감천,
버스가 무사히 7시에 황간시외버스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고스방 또 전화질이다. 어디까지 왔써!
곧 내리...
즈그마누래 내려서라도 도망가뿔까바 주차장 입구에 차대놓고 기다리는 고스방
집에 들어서니 아버님이 춥다고 이불속으로 어여 들어 오라고 거실에 깔아 놓은 매트를 들리서 앉으라고 한다.
에고....울 아버님 너무 좋으시다. 고스방은 저리갓!
새로 김치 한 포기 꺼내서 고스방이 낮에 앉혀 놓은 뜨신 밥을 퍼서 양껏 한 그릇 퍼먹는다.
세상의 근심이 금방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