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동하며 깨어나는 봄이 왔으니 황간면 마산리 삼팔칠번지 우리집 집구석에도 매일매일 분자 운동이 활발한 모양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상민이는 옥상방에 고시원을 개업하고 인강과 교습서를 번갈아가며 익히며 행정법이라는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문이나 법률용어를 들으면 무슨 외계언어인양 전혀 못 알아먹는 시늉을 하며 머리 짤래짤래 흔들어대다가 막상 코 앞에 닥치니 머리는 쥐가 날 지경이라. 걸핏하면 이게 무슨 말이야 엄마...하고 물어 쌌는다. 나는 뭐 뾰족한 수가 있나? 그냥 귀 동냥으로 그간 주워 들은 것들을 마구 들이대며 설명을 해주고는 있다만, 피차 골이 흔들리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상민이는 엄마,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 코 앞에서 치킨냄새가 막 나는거 같어..하고 스트레스 해소용 먹거리 주문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도 용이치 않는 일, 상민이 다리는 코끼리다리보다 더 굵다. 으아아아악....상민아 좀 참아조오오오오~~~
그러나 상민이만 그런게 아니다, 누구는 봄이 오면 마음이 괘히 새침해지며 기운이 없어지고 입맛이 똑 떨어진다고 하더만, 나는 우예된 심판인지 입맛이 양달에 돋아나는 쑥처럼 마구마구 돋아난다. 이렇게 입맛에 대해 자판을 두드리는데도 이미 입 안에서는 침이 한 번 핑그르르 도는게 츠릅 입맛이 다셔지는것이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이 불어서 작년 가을에 산 바지가 이미 다리가 들어가지 않는데도 빌어먹을 식욕은 사라지지 않고 대뇌와 소뇌, 그외의 갖가지 부신피질 홀몬까지 몽땅 점령을 하고 입으로 들어오라들어오라 주문을 외는것이다.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실 구석구석을 뒤져서 입으로 꼭, 꼭, 씹으며 침샘의 활발한 작용에 엔돌핀이 샤워처럼 뿌려지는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해도 마땅찮을 판국에 몇 번 씹으면 음식 특유의 맛들이 알알이 느껴져 손은 또 하나 더 집어 먹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웬수가 따로 없다. 구신은 모하나 내 입맛 좀 안 잡아가구..
2.
지난 19일은 어머님 기일이다, 이제 2주기가 되었네. 혼자 재료를 준비하고 부침개를 구을려고 동당거리며 준비하고 있으니 옥상방 효녀가 강림해서 날 도와준다.
동그랑땡도 만들어주고, 버섯전의 양념도 조물락거려서 섞어주고, 동태전 구울 땐 마른 밀가루도 묻혀주고, 부침개 채반 정리도 날라름하게 해주고. 누차 말하지만 딸이 있다는건 나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저녁을 먹고 어물을 쪄내며 젯상을 차리는데 아버님은 뭐가 못마땅하신지 이거 들여와라 저거 들여와라, 상 위에 놓아 두었던 음식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다가 부침개가 툭툭 흐르고....하여간 하루종일 잘 참아온 것들이 일시에 머리뚜껑으로 몰려 올라간다, 칙칙 푹푹, 칙칙 푹푹....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가려고 한단다. 고만 부애가 폭발을 했다. 아니 동서는 늦게 온다지만 연지아빠는 좀 일찍 와서 젯상 차리는데 좀 거들면 안 되냐구, 아버님 혼자 저리 애쓰시는데 일찍 들어와 좀 하면 좋잖어.
나는 정말 성격 좋은 사람이다. ㅎㅎ 겪어 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부애가 폭발하면 좀 더러워진다 승질이. 다시 안 볼것처럼 쏘아붙이는 것이다. 매정하고 단호하게. 상민이는 엄마가 그럴 땐 무섭다고 한다. 얼굴에 고스란히 다 나타난다고. 나는 아직도 내공이 부족해서 그렇다. 고칠 생각 없다.이렇게 살다 죽는거지.
뭐 그러다 말았지만 하루 종일 후다닥 거린게 괘히 억울해서 제사 지내고 밥 비벼서 배가 빵빵하도록 제삿밥을 먹었네. 부애내면 뭐하냐...다 내 손해지. 살만 더 찌는거지쩝..
3.
제대한 예비군 고병장 병조는 대전으로 살림을 났다. 집에 있어봐야 농사스킬 밖에 습득할게 없다면서, 아빠는 해줘도 해줘도 끊임없이 요구하니 내가 나가는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며 친구랑 카톡 몇 번 두드리더니 당장 짐을 싸는 것이다. 고딩동창이 자취하는데 거기서 같이 살면서 동창 사촌형이 개업한 깐풍기집에 알바를 나가겠다는 것이다. 깐풍기집 알바를 오후에 하면서 오전에는 헬스장에 나가 몸 만들기를 체계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뭔 사이트에 들어가서는 헬쓰 보조제라나 그런 걸 주문했는데 미국에서 직접 보내 온 개사료통 만한 보조제가 왔다. 그걸 먹어야 몸이 만들어지는가? 하여간 그걸 보물 단지처럼 끌어 안고 대전으로 날랐다.
일 주일 일하고 할머니 제사라서 집에 왔는데 손등은 군데군데 패였고 설거지 하느라 손등이 다 텄다.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를 해야지, 속에 면장갑도 끼고..
여느 엄마라면 그걸 보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나는 쿨한 엄마 아닌가. 그냥 손등에 후시딘 듬뿍 발라주고 말았네. 그러면서도 병조는 징징 짤지 않는다. 그게 병조의 강점이다. 늘 목소리가 정월 초하룻날이다. 옷도 사야한다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에 앉아 내 카드 긁어 주문을 하지만 밝고 씩씩한게 좋아서 그냥 표면적 잔소리만 몇 마디 흘리고 말았네, 월급타면 갚아 준다는데 뭔 말을 할 것이여?
자, 이제 병조는 깐풍기 스킬을 배워와 우리에게 깐풍기 해 줄 날도 머지 않았겠지? ㅋㅋㅋ
4.
포도밭에 거름을 내었다. 작년 보조사업 신청에 전동운반기 신청을 해두었는데 올해 지원자로 결정이 되었다. 치자면 전동 리어카인 셈이다. 포도밭 골사이에 거름을 하거나 포도 따서 담은 콘티박스를 나를 때 무거운 걸 편하게 옮길 수 있도록 만든 기계다. 리프트 기능까지 있어 화물차 적재함 높이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백오십만원 보조에 이백 팔십만원 자부담이다. 그러니까 리어카 한 대에 사백 삼십만원이란 말이다. 그래도 점심 먹고 느즈막히 가서 거름 백 오십포를 다 넣었으니 사람이 일 한다는 말도 자꾸 옛말이 되어간다. 작년에 상민이라 외발 구르마에 거름 백 사십포 넣는데도 며칠 동안 둘이서 똥을 쌌는데..
자,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져간다. 단지 돈이 자꾸 필요한게 좀 흠이다. 그러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한다. 좀 편하자고 더 열심으로 일해야한다. 이게 악순환이냐 선순환이냐.
거름 잘 넣고 집에 온 고스방이 화를 버럭버럭 낸다. 치자면 포도밭에 거름한다고 자기 일을 못했다고 그러는거다. 하도 힘들어 나도 좀 앉아있었더니 대뜸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밥 안 차려놨다고 인상을 있는대로 쓰고 있다. 퍼뜩 밥 차려주면서 뭐라 했더니만 더 화를 부르륵 내고 난리다. 아니, 나는 뭐 자기 일 할 동안 밭에서 삽자루 들고 춤추며 놀았냐? 실컷 일 잘하고 승질 낼 땐 정말 황당하다. 같이 거름내고 일한 상민이가 그런다.. 우리 저 전동마차 작동하는 법 퍼뜩 배워서 내년에는 엄마랑 둘이서 거름내자..응?
하이고...그러자 그래. 대단한 거름 유세가 나셨따아~~
5.
봄이 되니 묵은 김치는 손이 안가고, 이제 이런 파릇파릇하고 아삭한 것들에게 손이 간다.
어제 장보러가서 열무 두단에 얼갈이 배추 한단, 시금치 두 단, 부추 두 단, 기타등등....시퍼런 채소들만 잔뜩 사왔네
어데 농사 잘 지은 밭 한 뙈기는 들고 온 듯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