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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황금횃대 2013. 5. 11. 22:17

1.

어디부터 시작해야하나..

 

2.

일기장을 들춰보니 4월 21일이 마지막 기록 페이지다. 오늘이 5월 11일, 세월은 이 말 한 마디 뱉어 놓고 성큼 건너 뛰었다, 후딱!

 

3.

아버님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가계부를 들춰 보니.

기운 없다면서 아버님이 일어나질 않으신다. 자주 그런다. "링거주사라도 맞고 오실래요 아버님"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아버님이 "그럴까" 하신다

고스방에게 전화해서 손님 뜸하면 아버님 모시고 동네 병원 좀 다녀오라고 얘기한다. 고스방은 흔쾌히 아버님을 모시러왔다. 자동차가 고장나서 고치느라

예정에도 없던 지출이 있다고 끙끙대던 고스방 손에 오만원을 건넨다. 아버님 주사 맞으신다는데 당신이 계산해요. 고스방이 걱정하던 얼굴에서 대번 주름이

두어가닥 펴진다. 맨날 돈을 벌어도 매번 돈 씀씀이에 전전긍긍이다. 그에 반해 고스방 등처먹고 사는 여펜네는 맨날 여유만만이다. 옛 말 그른거 하나 없다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뙛놈이 번다는 말.

 

아버님은 노란 주사액이 섞인 링거액을 맞으시고 조금 생기를 되찾았다. 오줌 한 번 누면 약발이 사라진다는 오만원짜리 앰플 하나. 기분 문제지 뭐.

의사 백씨도 눈을 찡긋하며 그리말한다. 백씨는 장가 안 간 노총각이다.

 

4.

사월 한 달은 두달치의 강습료를 내고 스포츠댄스를 배웠다. 황간면 주민자치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이번 5월 9일 주민 복지 박람회 행사 때 영동군 내 11개 면에서 운영하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의 발표해도 겸해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번에는 스포츠 댄스가 대표 프로그램으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황간면은 몇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서예, 어린이 밸리댄스, 스포츠 댄스, 요가, 노래교실, 오카리나 강습 이런 것들을 운영을 한다. 그 중에 나는 오카리나와 스포츠 댄스를 배우고 있다. 내가 뭔 댄스? 하며 데면데면했는데 꽃샘이 극구 좋다고 가자하여 나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실버벨 곡에 맞춰 왈츠, 또 팝송 한 곡에 맞춰 남여 짝을 지어 차차차 종목 한 가지 더해서 두가지를 연습하는데 다들 연세가 있는지라 (내 여자 짝궁은 일흔 다섯 잡수신 할머니 ㅎㅎ) 금방 배워도 금방 순서를 잊어먹고 왼발, 오른발, 나가는 순서가 틀리고, 자세를 꼿꼿이 하라고 바락바락 강사가 가르쳐줘도 금새 꺼꾸정 본래의 뼈형상으로 되돌아 가버리니 목소리 큰 강사샘이 한번씩 벼락처럼 괌을 지른다.

그렇다고 뭐 젊은놈은 잘하나...오십보 백보여. 겨우 동작 익혀 몸에 쫘악 달라 붙는 댄스복입고 경연대회에 참석해서 끝난게 지난 9일이다.

내가 이 나이에 어디서 어떻게 이런 옷을 입어 보겠는가. 또 여든 둘이신 시고모님도 같은 회원인데 고모님은 또 어디서 이런 복장으로 무대에 올라 보겠는가. 그런거보면 촌구석 살이도 영 나쁜건 아니여.

 

5.

지난 3일은 루피나 수녀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부산을 다녀왔다. 마침 5일 친청 엄니 생신과 맞물려 5월 3일 부산가서는 내처 대구 들렀다. 이틀 지난 뒤 황간으로 왔다.

세시에 집을 나가 해운대 신도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넘었다. 엄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지난 달 뵐 때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만 돌아가신게다.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수녀님이 말을 한다. 같이 살진 않았지만 오십년이 넘은 모녀간의 정이 있고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그 슬픔을 어디다 내놓을 수 있을까. 그래도 수녀님이 연신 밀려오는 손님치레를 다하며 장례일정을 잘 치뤄내고 있었다. 막내 동생 근태도 상주 역활을 잘 하고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은 늘 조마조마하였다. 그녀를 알고부터 지금까지. 내 생활이 주옥(?)같아 자주 그들을 돌아볼 수 없었지만 한 번씩 생각하면 친정 동생들보다 애틋함은 더했다. 혼자 투석을 하면서 살아내시는 엄니도, 갈등과 반목, 그리고 화합으로 가기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부대끼는 것들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묵묵히 견뎌야하는 내친구 루피나를 바라보는 나도 가슴이 타고 애가 탔다.

 

이제 엄니 돌아가시고 한 시대의 막은 또 한 거풀 뒷배경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남은 형제간이 오손도손 잘 살았으면 좋겠다.

 

6.

어제 시할머니 제사날,

제사장 봐서 부엌에 놓아두고 밭에 가서 미나리 쪽파 뽑아와 다듬어놓고 제수음식 하려는데 아버님이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시다면서 우겨쥐고 앉으신다. 깜짝 놀래서 고스방한테 전화하려는데 마침 고추모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온다. 여차저차 아버님 편찮으신데 퍼뜩 대전 병원으로 가야겠다니 준비하란다. 아버님하고 같이 병원 응급실로 가서 검사하니 관상동맥이 문제가 아니고 그 동안 신장 기능이 떨어져서 물과 노폐물이 빠지지 않아 몸이 산성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그래 심장에 무리가가고 그런다며 입원을 하란다. 어제 아버님 입원하시고 투석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집에와서 제사음식 장만해서 열 두시에 시할머니 제사 지냈다.

 

포도순은 새록새록 나오고, 고추도 심어야한고, 마늘밭에 지심도 매야하고. 제사에 생신에 행사는 줄줄이 비엔나로 달려있고..

아이고, 오월 이 한 달은 어떻게 살아낼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