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밥상보 만들기

황금횃대 2013. 9. 3. 18:35

 

 

 

눈 뜨면 밥 한 숟갈 먹고 포도작업하러 간다. 올해는 첫 수확이라 양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자꾸 지겹다는 느낌이다. 이것저것 걸쳐놓은 일이 뒤통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멀티플레이어가 되기 힘들기 때문에 일을 줄여야하는데도 그걸 제대로 못하고 허덕댄다. 그러면서도 나는 옥탑방에 올라가 어제 저녁에는 삼베를 끊어 밥상보를 만들었다. 지난 봄에 지장사 절에 있는 보살에게 밥상보를 하나 선물했더니만 보살 동생이 절에 와서는 그게 맘에 든다고 자꾸 언니에게 달라고 했나보다. 보살도 제 앞으로 선물 들어 온걸 순순히 내 주기 싫어서 자매가 보재기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 하더란다. 그래 옆에서 보고 있던 스님이 내가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주마..해서 싸움을 말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안하지만 그 밥상보 하나 더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노스님이 그리 부탁하시니 내 바쁜거는 둘째치고 거절을 할 수가 없다. 얼마간의 시간을 벼르고 벼르다 어제는 삼베필을 펼쳐놓고 사이즈대로 잘라서 중간 폭을 맞대고 박고는 가장자리 박음질을 한다

달달달달...재봉틀이 신나게 돌아간다. 울 아덜놈 낳고 친정가서 산후조리할 때 친정엄마가 걸구친다고 버리려는 것을 고스방 택시에 기를 쓰고 실어서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빨간색에 나전까지 놓여 있는 마라톤 재봉틀.

몸체에 제법 엔틱 필이 나게 금속 조각이 부착 되어 있는 오래된 재봉틀이다. 지난 겨울 골목길에 틀 고치는 할아버지가 방송을 하며 지나가기에 거금 십일만원을 들여 북집이며 여러곳을 손봐서 재봉틀은 연한 배처럼 잘 돌아간다.

재봉틀이 덜거덕거리지 않고 자신이 내는 일정한 리듬을 부드럽게 뽑아내며 천조각을 사뿐사뿐 제 땀수로 건너갈 때, 미학이란 먼 곳에 있는게 아니다.

 

오늘 고스방이 스님한테 간다고 하기에 포장해서 건내주었다. 벌가리 선머슴같은 여편네가 이런걸 척척 만드는 것 보면 그거 참 신통방통하기도 하겠다.

 

포도작업하고 작업장 빤떼기까지 싸악 씰어놓고 와서 이렇게 몇 마디 주끼고 간다. 사는 일을 쓴다는 건 별다른 기교가 필요 없다. 내가 움직인 동선 속에 내 삶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것이고, 그것이 연속이 되어 내 인생의 베 한 필이 짜여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