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영동 장날,
고스방은 나랑 같이 로또 복권 사러 가다가 길 옆에서 모종 파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고스방은 가지, 토마토 모종을 사면서 박 모종도 세 푀기를 샀다.
감나무 사이, 고추골 옆에다 세 포기 심었더니
이 자식이 얼마나 잘 커나가던지 감당을 못했다.
박도 흥부 자식마냥 딩굴딩굴 잘 달려서
박나물 두 어번 해먹은 거 밖에 없는데 벌써 가을이 되었다
박은 표면에 솜털 가시면 나물을 해 먹을 수가 없다. 아주 어린 박이라야 나물이 된다
포도따고 뭐 그러다보니 박 따먹을 시간도 없고,
또 어쩌다 박나물이지 맨날 해놔봤자 먹지도 않구.
아버지가 하루 가서 박을 다 따고 덤불 정리를 싹다 하셨다.
박을 실어오니 얼마나 많던지... 남자 1호 고스방은 박바가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은 배고픔이기도 하고 행복한 어느 한 날이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기도 하고
또 포만이기도 했다.
고스방은 박을 심으면서 속으로 지혼자 야멸찬 욕망이 꿈틀대었으리라. 내 기필고 박 바가지를 만들테야! 하는.
비도 오는 어느 날 아침,
일하러 나간 고스방이 얼마 안 되어 또 들어왔다. 손에는 새 톱을 들고.
무답시 저 딩굴딩굴한 둥근 박을 퍼뜩 타서 바가지를 만들어야지하는 욕구가
그날 아침 정신없이 솟구쳤던 것이다. 박을 타던 고스방, 박 타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박 한 개를 다 타기 전에 알아버렸다 ㅡ.ㅡ;;
쉽게 생각해 현관 계단 난간 우에 박 하나 올려 놓고 타는데 힘이 어찌나 들어 보이던지..그러기나 말기나 난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야 내년에 박 심을 생각을 안 할거 아닌가.
결국 박 하나 타놓고 고스방은 다시 일하러 가고 나머지 박은 친정 아버지와 아들 병조 몫으로 남겨졌다.
비는 오는데 박을 타서 박 속을 파내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는 그 날 잔치가 있어 괴산 갔다 왔는데 어찌어찌 아버지가 박 속을 파내고 박을 매매 삶아 건져놓았다.
다시 나머지 박 속을 숫가락으로 깨끗하게 긁어 내고 옥상에 올려 말린다.
하얗게 말라가는 바가지를 보며 고스방은 하루에도 두 번씩 옥상을 들락거린다.
저기 바가지에 튀밥 담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구, 그라고 모심기 할 때 박바가지에 밥 비벼 먹으면 껌벅 넘어 가게 맛있다구..
이런 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박바가지 만든 보람을 찾으려는 고스방.
그러나 저노무 바가지 만든다고 아들하고 아바이하고 쌈 나서 호적 파버린다는 애기까지 안 나온게 천만 다행이지.
그 깊고 넓은 속사정을 우찌 말로 다 하리요 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