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농사지은 콩이 서말쯤 남았다.
차잂피일 메주 쑬 날만 잡다가 보름이나 지났다.
이왕에 간장 된장 내 손으로 만들어 먹기로 작정을 했기에
더는 미룰 수가 없어 팔 걷어 부치고 콩 서말을 다라이에 담궜다.
하룻 밤 자고 일어 났더니 콩 서말이 부어 놓은 물을 다 잡아 먹고 수북히 올라와 있다
아침 나절 두어 바게쓰 물 더 부어 놓았다가 설거지 하고 청소기 휘리릭 돌리고는
가마솥에 콩 앉히러 간다.
내 게으름을 너그러히 하늘은 받아 들여 그리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하루 종일 나무 주걱 들고 현관을 들락 거리며 콩을 젓고 불 조절을 하고 뜸을 들인다.
느린 음식 장류.
발효는 물론이거니와 조리하는 것조차 하루 종일 걸린다.
그걸 다시 퍼담아 한 소끔 식혔다가 자루에 넣고 비닐로 장화를 만들어 신고는
매매 밟아준다. 콩알 만한 땀방울이 눈 앞에 후두둑 떨어진다.
몇 번이나 수건으로 땀을 훔쳐내니 아버님이 자루 아구리라도 벌려 줄 요량으로
콩 다라이 앞으로 다가서신다. 그게 더 힘 키인다.
옛날 어머님 같으시면 내가 내치지도 못하지만 기어이 어머님 방식을 고집하시느라
무릎 걸음으로 다가 앉던 생전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살아가면서 그런 환영을 얼마나 나는 자주 느낄끄나.
작년에 섣부르게 밟았다가 메주가 흐트러지는 경험을 한지라 이번에는 메주 틀 우에 올라가
꼭꼭 밟아준다. 구석구석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귀퉁이도 야물딱지게 밟아 준다.
메주틀 위에 올라서서 이리저리 움직이니 마치 신어미를 받아 들일 때 어린 무당이
작두를 타는 듯 하다. ㅎㅎㅎ
자그마한 메주틀 우에서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기우뚱거리며 마루바닥으로 떨어진다.
사는 일은 이렇듯 작은 메주틀 위에서도 균형감각을 요구한다.
메주 온장 아홉장 디뎌놓고 나머지 남은 콩으로 작은 장 하나 만들었더니 열장이다.
예전에 어머님께서는 메주는 짝수로 만드는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엌칼을 가져와
작은 메주장을 반으로 또갰다. 열 한장이 되었다.
메주콩으로 퍼 놓으면서 청국장 용도로 서너 바가지 따로 남겨 두었다가 청국장을 앉혔다
전기담요에 청국장 소쿠리 얹고 상보 덮에 마무리를 하여 이불을 덮어 놓았더니
사흘만에 청국장이 무럭무럭 떴다.
소금 넣고 콩콩 찧어서 두 통 장만해 놓고 나니 겨울 양식 준비가 끝난 듯 뿌듯하다.
이즈음 싸악 씻고 거울에 나를 비춰 보면
대견하고 이쁘다.
이런 나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하나 줘야겠다
ㅎㅎㅎ
쇼핑몰이나 들어가 볼끄나...푸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