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들보다 늦게 심어도 늙은 호박은 일찍 땄다. 따다가 떨어트려 맷방석만한 호박이 반으로 툭, 쪼개 졌다. 아뿔사, 겨우내 보관하다가 입이 쓸 때 달달하니 호박죽이나 쑤어먹어야지 하는 희망은 바로 접었다. 아버지는 대번에 호박을 갈라 씨를 훑어 내고 잘라서 호박껍질을 벗겼다. 미끌거리는 호박씨를 씻어 베를 깔고 날라르미 볕에 널었다. 껍질 벗긴 호박은 주황빛이다. 혼자 봇도랑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인고의 세월을 보낸 끝에 저리 익었다. 말려서 가루를 내어놨다가 겨울에 '쉬운 호박죽 끓이기'에 도전해야겠다.
죽에 관한 한 나는 할 말이 쪼매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저런 이유와 서운함들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입을 다물면 그 사연들은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한 두가지 이야기는 바깥 세상에 내놓기도 했지만 어쨋던, 사연은 한 두가지 보다 훨씬 많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시집 살이>라고 한다.
아직도 아버님 방을 정리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입으셨던 셔츠와 바지는 허리띠가 끼인 채 그대로 옷걸이에 걸려 있다.
먼지 앉는다고 비닐 봉지에 하나씩 넣어 보관하던 재향군인회 참전용사 모자도 여름용, 겨울용으로 따로 걸려 있는데 그것도 어떻게 해야한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어도 옷을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어머님이 보고 싶으시면 장롱 문을 열고 어머님 옷이 걸린 옷걸이에 냄새를 맡으시면서 여기서 느그 어무이 냄새가 난다고 맡아 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 냄새를 모르는 울 형님은 아모 냄새도 안 난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아니라구, 가만히 냄새를 맡아보면 느그 어무이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건 부부만이 아는 냄새며 체취다.
가끔 가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속옷과 손수건, 신던 양말이 들어 있던 서랍을 차곡차곡 정리를 하셨다. 그러고 나보고는 거기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했다. 하루는 아버님 안 입으시는 작아진 옷들과 오래 된 옷을 정리하면서 어머님 한복을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홀로 우셨다. 첨에는 왜 우시는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머님 옷을 치워서 그렇게 우신거 같다.
그제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어 저녁에 대구 갔다가 친정에서 자고 담날 오전에 황간 집으로 왔는데 새벽차로 올 줄 알았던 여편네가 오지 않으니 아홉시가 조금 넘자 고스방이 벼락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왜 안 오느냐고. 이제 아침 먹고 가려고 한다 하니 삐졌는가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옆에서 듣던 울 엄마는 화가 이따만시 났다.
"어이구 어지가히 보고 싶은갑다."
"엄마 보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고 일 시킬려고 그럴겨"
"일도 그마이 했으면 됐지. 먼 일을 시킨다고 아침 부터 전활 하노"
나는 조금 더 앉았다가 열한시 반점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고서방한테 엄마 얘길 하며 왜 그랬냐고 했더니 혼자 자는데 춥더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부지가 그리 춥지 않는데도 보일러를 자꾸 올리라 한 이유를 알았단다. 혼자 자니 그렇게 춥더란다. 에라이~~
아버님이 그러시는건 이해가 가지만 고서방은 좀 아니잖아.
효자효자 말로만 효자 고서방도, 아버님 돌아가시고야 알아 차린 효가 있으니...부모님 공양에 완전함이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고서방은 엄마 아부지가 안계시는 고아가 되었다.
형제도 막내와 큰누나만 남았으니 여섯형제 중 삼남매와 부모님은 다른 저승에, 셋은 이승에 남겨졌다. 가족의 규모로 보자면 저승의 가족이 훨 규모가 커졌다. 살아 남은 자가 더 고립된 상황인게다. 딸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깜짝 놀랐다. 그렇지, 우린 살았다고 안도할지 모르나 궁글려보면 우리가 이제 멀리 떨어진 것이고 저승의 부모와 형제는 같이 사는 것이고...
경계의 다름에 너무 슬퍼할 이유는 없다.
아직도 아버님 방은 아버님이 드시던 베지밀과 약봉다리 상자가 그대로 있고, 아버님이 쓰시던 면도기도 그대로 충전중이고....
삶은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또 아들을 낳고 .....의 영속성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공유하던 것들이 여전히 남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