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포도일도 어지간히 끝이 나간다
옛날, 내가 포도 농사를 지은 첫 해, 고스방이 농사 지은 품값으로 백만원을 주었다. 그 돈을 받고 젤 먼저 구입한 것이 백석의 시집 <맷새소리>였다.
농한기 동지섣달 긴 밤에 그의 시를 읽으며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이처럼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게 감정 이입하였다.
눈 내려 쌓이는 날은 나도 마가리의 눈 속에 있었고 방을 쓸다 거미를 발견하면 또 그의 시 거미를 생각했었다.
또 여승이란 시를 읽고 가슴이 쩌르르 저렸던 기억도 오래 남아 있다.
올해는 포도 돈 번것으로 이용악의 시집을 사야지. 그러고 보니 서점가서 시집 사 본지도 까마득하네
소설책도 사야겠다. <리스본행 야간 열차>
영화는 본적이 있는데 책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은 <은교>이후 첨이다.
월급 십만원 받아서 <객주> 낱권으로 사보던 그 힘으로 나는 여직껏 살고 있다. 봉노방 천봉삼처럼, 길 섶 환삼덩쿨처럼, 고만고만한 겨운 삶을 다독여 가며 사는 것이다
자고나면 뼘가웃씩 높아져 가는 하늘과 고개 숙여 낱알을 여물게 하는 바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벼이삭을 보면 정말 깔축없는 가을이구나..
고마리, 여뀌꽃 피고, 물봉선 흐드러지니 더 말할 것도 없는 가을인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