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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추위 노파심

황금횃대 2017. 6. 7. 22:44

첫 추위 노파심, 그리고 따뜻해보기

 

 

 

 

바람이 자꾸 불어,

아침나절 설거지도 처 담궈놓고 이빠진 대빗자루 들고

손바닥에 가시가 벡히도록 뒤안에 감잎사구 쓸어냈는데

아, 또 저 빌어먹을 바람이 불어 장꽝이 비잡도록

감잎사구를 떨궈놓네

이맘 때 쯤이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도 뒤안 돌아가보면

발칵발칵 성질이 나는 것

쓸고, 태우고, 돌아서면 한 바탕 어질러 놓는 꼴이

꼭 세살 먹은 아이들 같어, 바람하고 늙그막 돌감나무는 재재질하느라

신이 났어요. 푸른 하늘에 되돌아 올 것도 없는 웃음을 종일 까르르 웃다.

 

 

현관문도 뒤질세라 장단을 맞추며 떨거덕떨거덕 어깨를 흔들어쌌고

마당 가장자리 양푼이, 소마구 앞에 물바게쓰, 양은세수대야들이

얼씨구나 바람 맞고 뎅그르르르 굴러다니느라 마당은 한바탕 소란 중.

그러기나 말기나 그믐을 향해하는 구월의 달은 높이도높이도 떠 올라

이 밤, 내 가심패기 한 구석에 맑간 빛으로 홀로 빛나다.

 

 

세상도 내집 방구석만큼만 따뜻하거라 더도 덜도 말고

딱, 이만큼만 모든 이의 아랫목이 따뜻했으면 좋겠네 하다가 울컥 눈이 뜨끈하다.

바람은 내일의 차가움을 지금부터 예고하겠다는 듯 낡은 앵도나무 가지끝에서 밭은 기침소릴 내어쌌네, 아직은 좀 더 따뜻해도 되는데...

아비를 잃은 어린 가슴도 아직은 따뜻해야하고, 지아비를 크레인에서 풍장시킨 애처로운 여편네도 제 스스로 가슴 다독일 때까지는 좀 따뜻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날씨는 어짜자고, 어쩌자고 여밀 틈도 주지 않고 차갑게 내려앉으려는지......

 

 

딸아이 학원 마중 갔다가 늦도록 이불을 꾸미는 수예점 앞을 지나가다.

내일 아침 국거리용 줄거리 미역을 한 봉다리 사고, 생각없이 음료수 부탁하는 아들놈 요구에 나는 더 생각없이 코카콜라를 한 병 같이 넣어 솜이불 꾸미는 그 집 앞을 지나오다

옆에 가게는 벌써 문을 닫고 불빛마져 끊어 깜깜한데, 홀로 환한 불빛 아래 이리저리 시침을 놓는 아줌마! 그 풍경이 너무 따뜻하여 나는 그만 발길을 멈추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렇게 이불 한 채 만들려면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요?"

 

어눌한 내 물음이 폭삭한 솜이불 위에 떨어진다.

 

그의 영혼은 아직도 風葬 중인데.....

 

2003.9.23

 

메일 모음통을 열어 보니 이 글이 있다

14년 전에 쓴 글이다

여전히 아사히 노동자와 몇몇 노동자가 고공 농성중이다

노동정책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젤 높은 평점을 받았다고 뉴스타파가 알려준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세월의 흐름 앞에서 그저 기가 막힌다 할 밖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