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고향으로 귀향한 가실님이 나도 시 편지 한 장 보내주오 하면 아침 댓바람에 쪽지를 보내오셨다
거절 못하는 병이 또 도지는 순간이다
마른 신나물 몰골은 몇 장이나 그려 남발하였는데 아직도 써먹는 내가 놀랍다. 근데 그려보면 생각처럼 유려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때, 그때 다 다르다는 말씀.
쪽지가 오갈 때 마침 신경현시인의 시를 읽고 상화씨 감상을 눈에 박아 넣을 듯 또박또박 읽고 있었으니, 저 풀꽃 옆에 놓여질 시로 손색이 없다.
잘 안 하는 짓인데 첨부서류로 상화의 글까지 필사해서 넣었다.
오랜만에 많은 글자를 썼네. 시도 그냥 눈으로 읽는 것보다 써보면 감정 이입이 더 잘된다. 내가 시를 쓰는 시인처럼 마음이 움직인다.
옛날 상고 졸업하고 대구 삼공단 주물공장에 다닐 때였다.
공장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동산양말 공장이 있었다
담벼락 높은 공장이라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빼꼼 들여다 볼 수도 없었고 경현의 시처럼 무표정한 여공들이 출퇴근 하는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몸을 웅크리고 돈벌이에 첫 발을 내딛인 내 모습은 보나마나 잔뜩 주눅이 들어 만원 버스를 탈출해 웅크린 모습으로 주물 공장을 향해 종종 걸음을 쳤을것이다
그 당시의 주물공장 사정은 말로 설명해 뭣하랴
소위 물 붓는 날이라해서 녹인 쇳물을 성형틀에 붓는 날이 있는데 그 날 만큼은 일이 고되다고 새참을 끓였다. 새참이래야 마른국수 끓여 맹물에 양념 간장 한 숟갈 얹어 주는게 다였다. 집어 먹을 반찬도 없이 국수 한 그릇만 달랑 주었다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고 몸 씻는 낡은 목욕탕 안에서 국수를 끓였다. 조씨 아줌마, 박씨 아줌마가 다른 날은 뒷일을 거들다가 이날은 잠깐 주방아줌마 역할까지 맡았다. 나도 가끔 그 국수를 얻어 먹으려 공장 안으로 스며든 적이 있었다
맹물에 간장, 그 국수 맛이 어땠것는가?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무도 아뭇 소리 안하고 잘 먹었다
파리하고 고단한 양말 공장 여공들만 고단한 삶이 아니였다. 빈도시락을 자전거 뒷자리에 꽁꽁 짜매고 퇴근하는 주물공장 총각도 고단하기는 매한가지
한달에 쉬는 날도 두 번 밖에 없던 시절, 분자씨도 용접공 종택이도 용접 불꽃처럼 제 생을 노동에 불태웠다
가끔 철판 절단 한다고 석필로 절단 선을 긋던 볼이 얼어 빨갛던 어린 종택이가 불현듯 생각난다.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그나 나나 열아홉 꽃으로 현장에서 버둥거렸다
아침밥도 뒤로 미뤄놓고 이렇게 똑딱똑닥 자판을 두드리자니 그 열병같던 시절이 참말로 잠깐이구나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