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와 굴비대가리
지난 토욜, 우리집 고서방도 상견례라는걸 해봤습니다. 별명이 고병장인 씩씩한 딸이 저만큼 팡팡한 신랑감을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양가 집안 식구들도 한 번 만나 봐야 전세집이든 월세집이든 집을 구할 수가 있다해서 코로나19 로 미루다미루다 잠깐 빤해지기에 대전 모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인사하고 한 이분 서먹했나요? 보통의 평범한 이 두가족은 참 편안히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한 삼십년 전에 옆집에 살다가 한 집이 이사가서 좀 못보다 다시 만난 식구들처럼 오만떼만 이야기를 다 합니다.
고향이 어딥니까로 시작해서 전상순 일가인 전두환 욕까지.
고양이가 새끼 낳은 이야기를 꺼내자 고양이, 강아지, 토끼새끼에 키워봤던 송아지 얘기까지 합니다.
삼백평 텃밭 농사를 짓는 신랑집 이야기에 우리는 포도,감,벼.. 사천평 대지주임을 들이대며 퇴비며 똥거름이며 그런, 혼사와는 1도 관계 없는 이야기를
밥을 먹으며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한식 코스 요리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보리굴비가 각 1마리씩 구워져 밥과 같이 나왔습니다. 이제 이 밥을 먹고나면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두 식구는 여직도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질 못 합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 그럼 날은 저희들이 받도록 할까요? 하며 물어봅니다.
고서방은 우리가 사주를 받아서 좋은 길일을 받겠습니다 하고 얘기하고는 밥을 먹습니다.
밥을 찬 녹차물에 말아서 굴비를 발라 먹는데 세상에 밥을 공기 그릇에 반도 안줍니다. 농사꾼을 뭘로보고 ㅠㅠ
추가로 밥 두 공기를 더 시켜서 우리집 식구들만 농갈라 먹습니다. 그래도 굴비가 대가리며 꼬리며 많이 남았습니다.
식사가 어지간히 끝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남은 굴비를 고양이 먹이게 싸가자며 두 집이 원만한 합의를 보고 애들 계산하러 가기에 봉다리를 하나 얻어오라 했습니다. 근데 애들이 오더니 식당에서 봉다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남은 음식 싸가지고 가서 먹다가 사고가 나면 식당 책임이라서 안된다고 합니다. 먹을거 아니구 고양이 줄거라고 해도 안된답니다. 그럼 거기서 스톱하면 좋았을것을 고서방은 포기하지 않아요. 마침 그 날 비가 와서 방에 들어올 때 우산 물 떨어지지 말라고 긴 비닐에 넣어가지고 왔는데 그걸 벗겨내서 모아 놓은 굴비대가리와 꼬리, 살을 길다란 봉지에 소시지처럼 집어 넣습니다.
저쪽집 신랑 식구들도 괜찮다고 같이 거들어 줍니다. 딸은 아빠 그만하라고 살짝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합니다. 대충 반만 채워서 봉지를 묶어 내 명품 가방에 꾸셔넣습니다 ㅠㅠㅠㅠ
정말 이런 알뜰 싫습니다
고서방 머리 속에는 오로지 잘 먹어 줄 고양이 생각 밖에 없습니다.
밖에 나와서 아이들이 식당 건너편 커피집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러 간 사이 두 남자는 금연 이야기로 또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상견례가 끝나고 헤어져 집에 오니 고서방은 양복도 안 벗고 고양이에게 굴비대가리 갖다 풀기 바쁩니다.
요누무 고양이들 굴비 살만 먹고 대가리는 뜯는 시늉만하고 굴러 다닙니다.
혼수는 어떡하지? 집은? 예물은? 뭐 이런것들은 애들 즈그끼리 알아서 하라하고 우리는 이제 존 날 받아서 한복입고 앉아 있으면 되나요?
남들은 상견례 자리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던데 ㅠㅠ
여담 1.
딸 친구도 보리굴비 정식 상견례때 먹고 남은 굴비대가리 다 싸와서 고양이 줬다고 하네요. ㅋㅋ
여담 2.
상견례 끝나고 올라가는 신랑집 차에서 신랑아부지가 우리도 굴비대가리 싸올걸 그랬네..하고 입맛을 쩝 다셨답니다.
여담 3.
부세 나오면 두어짝 사다가 보리굴비 만들어 원 없이 멕이고 대가리는 고양이 주라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