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추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보따리를 싸서 아들집으로 왔다.
아들집이라니. 아직도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아들의 소속은 언제나 내집이라고 생각했다.
원룸, 그 작은 공간에 살림의 구분도 없이 흩어져 딩구는 가재도구와 옷들을 정리하면서
나와 살아도 아들은 아직 내 손에서 정리되어야 하고 간섭되어지는 그런 자식이였는데 이번에 새로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는 그 구분이 뚜렸해졌다. 아들 집, 내 집.
이사를 할 때는 마침 포도 수확시기와 맞물려 짐을 옮길 때는 와 보지도 못했다
거기다 친정 엄마가 백신 부작용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또 포도일과 추석이 맞물려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다가
포도일 끝나고 추석이 오자마자 나는 차례를 지내고 아들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탔다.
아직은 살림이 없어 너른 집안에 하루 종일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 오는 집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시간을 보낸다.
작은 깃털을 들이밀며 돌지난 아이에게 미미라고 위협을 하면서 깔깔거리던 시간이 어제 같은데...하는 회상은 아모 의미가 없다. 그는 이제 제 살기를 스스로 찾아가고 적당히 부모와 타협하며 또 세상의 물리와 사람간의 갈등 사이에서 요리조리 미끄름틀을 타며 생존의 널뛰기 장에 이미 적응을 시작한 듯 하다.
나는 밀린 일기를 쓴다고 정초에 마련한 다이어리를 꺼내서 다문 며칠이라도 기록하지 못한 것을 사진이며 sns를 뒤져가며 굳이 볼펜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래봤자 맨날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리고 고양이 안부를 쓰고, 또 사위어가는 농사의 결말이 어떻게 되긋다...하는 추측을 기록하는 일이지만, 마땅히 천안 바닥에서 만날 사람도 부를 사람도 없다.
아들은 새집이 좋단다. 종일 햇살이 머무는 집이 어찌 안 좋을 수 있겠는가. 키 보다 더 큰 쇼파에 누워 안대를 하고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혼자서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나도 그렇단다 얘야...
핸드폰만 매일 들여다 보며 짧게 몇마디 주끼는 생활만 하다가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니, 아, 이런 시스템이라면 예전처럼 긴 글도 쓸 수 있겠다..싶은 생각이 든다. 한 때는 생이 왜그리 누추했던지. 여기도 떨어지고 저기도 떨어지고, 종이옷입은 중이 비 맞으며 하는 소리처럼 많이도 중얼거렸다. 가끔 옛것을 읽어보면 허~~참, 웃음도 나오는 것.
이제는 그저 담담하고 밋밋하여 그리 주낄 것도 없다만.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