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물 흐르듯 생각이 옮겨가는 길을 따라 가볼끄나.
어젯밤에 고스방이 열시쯤 집에 왔는데 오자마자 마당에 불을 켜라허네
티비를 보다가 득달같이 달려나가 처마 밑이 환해지는 불을 켜고 방에 들어오니
또 상순아~ 하고 불러.
앉자마다 또 관절을 뻗고 구부리고하며 일련의 동작을 연결시켜 일어나 마당으로
쫒아 나가니 이번에는 렌턴을 찾아오라 하네
옛날에도 말했지만 쓰는 것은 맨날 즈그떠리 써 놓구선 나중에 날 보고 찾아달래
신발장이며 뒤져서 삘건 렌턴을 찾아서 가져가니 얼씨고 불이 켜지지 않어
"배터리가 없나봐유 어쩌지?하니까
암말않구 차고에 불을 켜고는 쟈키를 가지고 차발통 쪽으로 가는거라
그래서 그냥 차고 불빛으로 브레이크 라이닝을 갈려나 하고 얼릉 방에 쏙 들어가설랑
연예가중계라는 티비프로를 소래높여 틀어놓고 보고 있는데 조금 뒤에 고스방이
씩씩 거리며 들어와 대뜸 욕부터 하는거라
"씨팔, 내가 렌턴 찾아오라고 했는데 뭐하고 방구석에 들어앉았는겨?"
말이 나오기전에 먼저 눙깔이 돌아가서 희득번뜩한다.
"차고에 불을 켜길레 그 불로 하는 줄 알았디만 아이랐어요?"
"씨팔, 내가 언제 그 불로 한다더노 불이 없어서 호이루 볼트가 부러졌잖아"
깜짝 놀래서 밖에 나가보니 차체는 쟈기 공가놓고 복스다마 끼와서 돌리다가 너트에 볼트
몸통이 끼인채로 똑 부러졌다.
시집 와서 이십여년을 집에서 라이닝 교체할 때마다 내가 조명기사로 일해서 엥간한건
나도 안다. 그깟 불이 조금 어둡다고 호이루 볼트가 부러질 일은 만무없다.
사람이 억지를 부려도 유만부득이지 불이 어두워 그게 부러지다니 지나가는 쥐새끼가 들어도
오호호호호 웃고 갈 일이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고스방은 절대 웃지 않고 부러트린 이유를 내가 렌턴을 찾아 오지
않아서 그게 부러졌다고 우긴다. 뭐라 한 마디 하면 오밤중에 세수대야 날리며 싸움 나겠고
그냥 부러진 볼트만 쳐다보며 가만히 있다.
근데 볼트가 하나만 부러진게 아니구 세 개나 부러트렸다. 씨푸알 나도 욕나오기 직전이다
아니, 불이 어두워 볼트가 부러졌다면 하나 부러졌을 때 그만 해야할 거 아녀?
세 개나 부러트려놓고서는 나한테 와서 화풀이다.
얇은 옷 입은 채로 스쿠터 타고 나가서 렌터 베터리 사오고, 렌턴에 갈아 끼우고는 불을 켜니
이 무슨 엎친데 덮친 사연인가 렌턴이 불이 안 온다.
그래서 또 집구석을 뒤져 퍼런색을 하나 더 찾아와 거기에 끼와도 불이 안 온다.
등줄기 식은 땀이 난다.
고스방은 연신 고함을 지르며
"저번에 쓰던 렌턴은 어디 놔뒀어?"
"내가 만고에 렌턴 쓸 일이 어딧따고, 당신이 쓰고 어디 놔두었는지 기억해보세요"
"뭐시라? 나도 그거 쓴 적이 없구만 빨리 찾아냇!"
농사도 안 지은 콩이 튄다. 방에 가서 아이들 스텐드 들고 나오고, 전기코드 감아 놓은 것 찾아서
연결해 놓고, 현관 불까지 모조리 켜서 대낮같이 밝게 만들어 주었다.
혼자 앉아서 하브 볼트를 돌려 볼래니 드라이버가 작단다.
드라이버 찾아서 대령
볼트 십자 대가리에 드라이버를 꽂고는 복스다마 끼워서 돌리는 걸로 때리더니 시원찮은가
망치를 찾아 오란다. 망치는 또 어데 놔뒀노?
찾다가 작은 손도끼가 보이길레 그걸 갖다 대령
손도끼 뒷쪽으로 얼마나 씨게 뚜드리박았는지 드라이버 끝이 십자 홈 안에서 부러졌다.
또 송곳 찾아와서 불을 비춰 부러진 파편 파내고..
고스방은 가마이 앉아서 뭐 갖고 오라 저거 갖고 오라 지시만 하고
나는 연장 찾아 대니라고 발바닥이 불바닥이 되도록 왔다갔다 한다.
운전밥 먹은지 몇 년인가.
그러면 늘 쓰는 연장 정도는 자기가 챙겨야지, 맨날 여편네 보고 찾아오라하면
여편네 일찌감치 죽었뿌리면 그 담에는 우짤건가. 허기좋은 말로 맨날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큰소리 뻥뻥친다만 조또 송곳 하나도 어디있는지 모르면서 잇몸그튼 소리허네.
어찌나 속으로는 화가 나던지
그래도 참는다. 이마빡에 참을 인자를 보이지 않는 붓을 꺼내 먹물 듬뿍 묻혀서 척척 써갈긴다.
忍, 忍, 忍, 忍, 忍,...... 세번만 참아도 살인을 면한다는데, 이 정도로 참으면 죽은 놈도 살려내겠다.
결국 혼자 하다가 안 되니까 카센타 사장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사장 차가 마당에 들어서자 인사하고는 얼른 방으로 쏙 들어왔다
어찌나 떨면서 서 있었던지 주뎅이가 시퍼렇다.
딸래미가 누워있다가 내가 들어오니 엉덩이를 들어주며
"엄마, 여기 밑에 손 넣어"한다.
다하고는 들어와서 화 낸게 미안한지...뒤통수를 벅벅 끍으며 아이들 틈에 슬쩍 끼어 앉으며
아들놈에게 오징어 한 마리 구워오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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