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쁜 농사철에 어제는 황간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지도자와 부녀회장 그리고 이장단, 면사무소 직원들이 버스 두대 맞춰서 놀러갔어요. 느릅나무 묵은 가지에서도 이제 새 잎이 나기 시작하는군요. 거기에다 어제는 비까지 내려 농사꾼들이 맘 놓고 놀기에 족한, 하늘이 허락한 날씨였세요. 날은 화창, 좋은데 관광버스에 발 올려 놓으려면 뒤통수 땡기는게 농사꾼 심정이여. 뒷동산에 올라가면 하다 못해 고사리라도 몇 오래기 꺾어 올 수 있는게 이 봄날의 눈부신 혜택인데 눈에 번한 그걸 뒷전에 두고 하루 놀다 오기가 쉽지 않단 말이재요.
이렇게 타자를 치는데 애수의 소야곡을 들으니 늑골 아래쪽이 찌르르르 합니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오이면...그 누가 울어 주나 휘파람 소오오오오오오오오리~~
예순 세명이 남.여 비율 어정쩡하게 나눠 타고 출발했어요
푸르러가는 산천에 퍼붓는 빗줄기는 새 잎들에게는 은총입니다. 바람과 손을 맞잡고 좋다고 버스 속에 우리 만큼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당진에 갔재요. 왜목마을에 차 대놓구선 회로 점심을 먹습니다. 촐촐하던 차에 맛있게 먹었어요. 근데 고추냉이가 뭐그리 닝닝하데요? 톡 쏘는 맛이 있어야하는데 이건 밀가리를 섞었는지 색깔도 희덕서그리한데다 맛 조차 니맛도 내맛도 없습니다. 고스방이 날 보고 늘 하는 말, <니 맛도 내 맛도 없다>라는 말의 느낌이 파악 와 닿더만요. 아하, 이런 맛이구나 나는.ㅎㅎㅎㅎ
다들 유람선을 타고 바다 한 바퀴 돌고 오는 모양인데 나는 안 갔습니다. 가 봤자 시끄러운 띵까뽕까 음악에다 흔들고 붙잡고 춤 추니라고 정신이 없을터인데요. 춤 추는 일이 얼마나 데근한 일인데, 다들 연세가 어지간 하신데도 끄떡도 없습네요. 땀을 철철 흘리며 평상시 관절염 류마티스는 어디다 때기나발 쳐버리고 팔을 흔들고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춥니다. 그렇게 하면 뭔가 마음에 씨원한 바람 한 줄기 지나가는가봐요. 말을 이렇게 하니까 나는 춤도 안 추고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서 있는 것 같지요?
자연 술 먹는 남자들이 버글버글 하니까 사소한 다툼도 많아요. 전부 어릴 때 부터 볼거 안 볼거 다 쳐다보면서 어울린 처지인지라, 이름 불러도 될 일을 나오는 말이 <야이 시발놈아~>입니다. 그러면 되돌아 오는 대답 또한 한 수 위입니다. <이 새꺄 왜 불러> 이러면, 먼저 부른 놈이 <어허, 이 새끼 봐라, 행님한테 말버릇이 뭐냐? 대답을 고분고분 해야지> 하면 <야 씨팔롬아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싸우겠다 싶은데 고기서 한 수 접습니다. <그러냐? 히히히 미안하다>
유람선을 타고 갔다 오니 네시가 다 됐네. 나는 차 안에서 한 숨 늘어지게 잤습니다. 유람선 타는 시간이 두시간쯤 되었으니 한참을 잔 셈이지요. 진정한 휴식이란 이런게 아닐까..생각했재요.
사람들이 돌아 오자 차는 또 출발을 하고 삽교방조제에 가서 또 사람들을 내려놓아요. 근데 버스 주차장에 엿 파는 사람들이 각설이 분장을 하고는 북과 장구를 갖다 놓고 춤을 추는데 또 한 바탕 신이 났어요.
사진기를 가져 갔으면 즐거운 사진 좀 보여드리는건데 그렇게 하질 못햇네요
옥포2구 이장은 각설이 분장을 하고 희안한 춤을 춥니다. 옛날 공옥진여사가 잘 추었던 춤입니다. 동네에서는 점잖은 이장인데 저렇게 변하다니, 술 한 잔 들어간 힘!을 새삼 느낍니다.
다시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남쪽으로 달려요.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갈라져 탔던 사람들이 상봉하듯 만나 서로 재미있게 노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2호차는 한바탕 난리를 떠며 싸웠다 하더만요. 그래서 싸운 사람 중에 하나를 1호타에 태웠습니다. 말도 많고 웃음도 많고, 호기도 넘칩니다.
나는 죽암 휴게소에서 2호차에 탔어요. 거기 구교동 부녀회장님과 신나게 놀은지 꽤 되었습니다.
황간 도착하기 사십분전부터 몸 풀기 시작해서 황간 나들목 들어 오기 전까지 미친듯이 놀았습니다. 그걸 고스방이 만약에 봤다면 눙깔 좀 돌아 갔을겝니다. 옷이 푹 젖었어요. 춤 추는 것은 자기 신명이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술 한 잔 먹어야 잘 논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는 술 하고 상관없이 놉니다. ㅎㅎㅎ
그렇게 혼신을 다 해서, 마치 신들린 듯 뛰고 흔들고 나면 진짜 개운해요.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서캐처럼 숨어 있던 사람살이의 뜨뜻미지근한 감정들이 뻗쳐 오르는 열기에 휘발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 광란의 시간을 빤뜩 보내고 나면 정신이 맑아져요 ㅎㅎ 이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구 나만의 방법이라요. 긴가민가 싶은 분이 계시다면 딱 한 번만 그렇게 해 보시구랴.
황간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 대놓고 저녁을 먹고 간다는데, 나는야 12시 교회 종소리를 들은 신데렐라처럼 퍼뜩 정신이 들어서는 집으로 달려갑니다. 어머님 아버님 저녁은 어떻게 드셨는고, 아이들은...하면서. 그렇게 집으로 뛰다시피 걸어가는데 저 앞에서 고스방 차가 와요. 스르륵 세우고 창문을 내리기에 내가 <저녁은 드셨어요?>하고 물으니 대뜸 <여편네가 놀러를 가면 하루 먹을 밥하고 국이나 된장이도 끓여놔야지. 뭐하고 먹으라고...>하며 소릴 버럭 지릅니다. 예의 그 희득번득한 눈을 굴리면서.
사람이 거 있잖여. 안 그래도 하루 놀다와서 미안해가지고 넘들 다 먹고 가는 저녁도 안 먹고 혼자 빠져 나와 집으로 가다가도 서방이라는 작자가 저렇게 기름 칠도 안 한 자봉틀처럼 뻑뻑거려싸면 참말로 종일 좋았던 기분 다 잡치지를. 고서방은 그 말을 내지르고 휙 가버렸재요. 내가 그 바쁜 아침에 뭘 했는지 알면 저런 소리가 나올까?
어젯밤 빨래 돌려 놨던거 손으로 헹궈서 탈수해서 건조대 하나 가득 널었지, 깨소금이 없어 참깨 두 판이나 볶았지, 시금치 삶아 무쳤지, 이면수 구워놨지, 양파 고추장에 무쳐 놓으라해서 그거 했지, 아버님 당뇨 체크해드렸지, 이불갰지, 청소기 돌렸지...7시 50분까지 면사무소 나가야 하는데 그만큼 했으면 많이했지 않나...으이구. 여편네 없어도 그저 한 두끼 무난하게 먹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꼭 그렇게 국에, 찌개에 마른반찬에 추진반찬 갖춰 먹어야하냔 말이재..
그러나...저렇게 호강에 받쳐 요강에 오줌누는 소리 하고 사는 날도 머지 않았으리. 어느날,
<곰국 끓여 놨슴> 딸랑 이 한 마디 적어 냉장고 문짝에 붙여 놓고 나는 새벽바람에 어딜 뜨고 없는 날도 오리니, 오리니 오리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