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골병들다.

황금횃대 2007. 5. 27. 11:20

어제 씨름하러 갔었세요

아침 아홉시에 시동생 차를 타고 갔재요

시동생은 동서랑 아들이랑 같이 응원부대까지 동원해서 가고

나는 단체전 출전이니까 나 혼자 가뿐히 갔세요

씨름판은 아침부터 왁짜합니다.

전직 현직 씨름 협회 사람들이 한복차림 혹은 양복차림으로 본부석 의자에

줄래리 앉았고, 각 면 대표 선수들은 모래 위에 올라가 줄을 서서 개회식을

하지요. 국회부의장 이용희씨도 왔더만요.

저번 선거 때 열린우리당 참패였어도 영동은 군수가 열린 우리당 소속이라

이용희씨가 각별하게 신경을 쓰는 것 같습디다.

올해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얼굴을 보네요. 얼굴 봐 봤자 뭐 별거 있겠냐만은

씨름판 임원들은 감투쓴 양반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데 일어섰다 앉았다

정신이 없세요.

 

정확하게 10시 30분부터 면대항 씨름이 시작됐재요

첨에 매곡면하고 작년 우승팀 영동팀하고 붙었는데, 어이쿠 쪼그만 매곡면이

영동읍을 냅다 내다꽂았어요. 영화란 참 부질없는거라.

 

우리는 부전승으로 올라가 이차전에서 용산팀하고 했는데 젤 처음 선수가

여자선수래요. 그러고는 중등부, 고등부 청년, 장년부 초등학교 이렇게 순서가

이어지는데. 용산 여자 선수는 츠자같더만 어찌나 힘이 세던지 나는 한판도

못 이겼세요. 허기사 어제 요가 하면서 전골자세를 무리해서 했더니만

아침에 다리가 후달달 떨리며 힘이 하낫도 없는거라. 생각같아서는 기권을

하고 씨름이고 뭐고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삼촌들 부탁도 있고 해서

모래판에 올라 가긴 갔지만서도 영 맥이 풀리는게 입이 바작바작 타는게

긴장만 되는거라요.

 

두판을 내리 가뿐하게 졌지요^^

용산 츠자는 작달막하니 키가 작은게 팡팡하니 생겼는데 얼굴에 표정도 없이

어찌나 힘이 센지. 정말 떠 오르는 힘이란 무시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도 다행히 뒤에 선수들이 많이 이겨서 우린 3등을 했어요

옛날 황간씨름은 그 힘이 막강해서 선수층도 두꺼웠고 감독이며 코치며

그 진용이 화려했는데, 그 역시 옛 영화에 불과한거라.

 

단체전이 끝나고 개인전이 시작되었어요

남자들은 서른세명이 신청을 하였고, 여자는 아홉명이 신청햇어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영동장사가 될려면 죽을똥살똥 힘을 써야하는데, 여자들은

두어판 이기면 결승 진출이라.

 

나는 단체전하고 나니까 어찌나 힘이 들던지 호흡곤란이 다 왔어요

목이 뭐가 걸린 듯 쒜에한게 따갑고 간지럽고, 기침이 자꾸 나오면서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질 않어요. 경상도 말로 씨껍했시요

임시 의료단이 있는 천막으로 가서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겨우 괜찮아졌어요

씨름 몇 번했어도 이런 꼴은 첨이래요

 

그래서 개인전은 안 하려고 했는데 추첨만 해서 우리 면에서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

대진표나 좀 유리하게 해 달라고 해서 시동생이 신청을 했는데, 딱 하고픈 마음이

없는거라.  그러다가 추첨을 하니 나는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번호를 뽑았세요

그러니 할 수 없이 1차전 겨룬 선수와 한 판 붙게 생겼어요.

그 선수는 양강 아지맨데, 벌써 영동 씨름대회에서 이등만 세번인가 두 번을 한

사람이라. 그 자신 우승에 대한 목마름이 너무나 갈급한데다 내가 알기로는

힘이 장사래요. 몇 년전에도 그 여자와 내가 한번 한 적이 있는데 다리 샅바 잡으면서

어깨 밀고 들어 오는 힘이 뭔 바윗덩이가 밀고 들어오는거 같어요. 머리도 바짝 위로

잡아 매서 한 가닥으로 길게 땋았고, 그 눈빛이며 까무잡잡한 피부가 바라만 봐도

포스가 느껴져요. ㅡ.ㅡ;;

 

그 아지매랑 하면서 또 내리 두판을 다 졌어요

힘을 당해 낼수도 없고, 다년간 그렇게 송아지 타 갈려구 작심을 한 사람이라 내게

기술을 거는데 나는 뭐 쭉도 못쓰죠. ㅋㅋㅋ

 

두번째는 어찌어찌 버둥거리다 뒤로 팍 넘어 갔는데 그 여자가 내 어깨를 찍어 누르며

넘어졌당께요. 정신이 하나도 없는거라. 뭔 망치로 두드려 맞는거 같애.

신발 챙겨서 본부석에 앉아 있는 동서에게 오는데 어깨가 깨진거 같어요.

아니나 다를까 지금 팔이 뒤로도 안 돌아가고 옷을 입을려고 팔을 끼는 것도 오만 인상을

다 찌부리고 이빨을 깨물어야 겨우 팔을 끼것어요.

골병 들었시요.

 

그 보다, 울 시동생.

영동군내 씨름계에 전설같은 인물아니우

아마추어 씨름대회에서 1등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개인전 출전했다가 대학교 2학년

청년한테 2:1로 졌시유

본부석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하면서 혀를 차더만요

동서랑 나란히 같이 앉아서 보다가 좀 그랬지요

기술이면 기술, 힘이면 힘...참말로 화려한 시동생인데 그 시동생이 지는 걸 보니까.

그것도 뭐 몇 번 씨름에 나온 알만한 선수 같으면 그럴 수도 있다 하겠는데 생전 첨 보는

선수라니까 기가막히죠. 그 심천선수가 결국 영동 장사가 됐시요. 울 시동생 올해 마흔

여덟인데, 그래도 덩치 좋고 남자 가슴이 애 젖먹이는 아줌마 젖보다 더 큰 그런 덩치도

가뿐하게 집어 던지더만. 그만 이제 그런 전설로 마무리를 해야 하나 봅니다.

 

씨름이 끝나고 다들 황간으로 되돌아와 고기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데, 어찌나 어깨가

아프던지 뭘 먹자 정도 안 나요. 시동생도 가슴이 우리하게 아프다고.

어이구.. 고서방 말마따나 둘이 가서 소 한 마리는 고사하고 골병만 들어 왔구만

 

다 죽어가는 인상을 하고 널부러져 있으니 고서방, 그런 여편네가 뭐가 이쁘겠어요. 그래도

파스 사와서 붙여주고 스프레이 파스 가져와서 모기약 뿌리듯 뿌려댑니다.

 

이제 앞으로 내 인생에서 씨름은 없습니다.

 

어휴....어깨 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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