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척

황금횃대 2007. 5. 30. 00:24

 

 

바빠서 죽네 사네 하여도 이렇게 한가한 척하며 나무 앞에 앉아 사진 찍을 시간도 있다

 

 

오늘은 포도밭에서 일하다가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였다.

오래된 친구 파피와도 통화를 하고, 도나지새임, 그리고 윤의님과도 통화를 했으며

전주 사는 농부아저씨와도 통화를 했다

그러자니 자연 퍼대지고 앉았는 시간이 많아.

하늘 쳐다보며 포도순 정신없이 질러 갈 때는 눈 위로 꿩이며 새들, 그리고 풍뎅이들이

날아다녀도 그게 눈에 들어 오덜 않는다. 그저 넌출거리는 포도순과 덩쿨손, 잎과 줄기

사이에 난 속 순만 눈에 뜨인다. 모질게 손으로 그것을 잡아 떼 나가는데 그 손놀림이

화투패 숨기는 타짜의 손놀림 못지 않다.

 

푸른 하늘을 모가지가 아프게 종일 쳐다봐도 눈에 정작 종일 들어 오는 것은 포도순

그러니까 사람은 제 마음이 가 닿은 것만 보게 마련이다.

 

이렇게 몸을 뒤쪽으로 꺾어 서서 일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앞으로 굽혀 준다

마치 굽은 젓가락을 반대로 힘을 주어 구부려 주듯이

그러면 사람 몸이 쇠붙이가 아닌데도 기분이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

이런 건 허리 아프게 몰입해 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모를 일이다.

 

전화를 받는다고 앉았으면 으례 막대기를 하나 찾아 들고는 땅바닥에다 낙서를 한다

"호호호호호 그랬어요? 어쩌구저쩌구"

입은 쉴 새없이 수다를 떨면서 손구락은 땅바닥에 동그라미도 그리고 줄도 긋고

그러다 보면 개미들이 기어가고,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종류가

한 두종이 아니다.

그것 역시 내가 땅을 밟고 평생을 살아 가지만 쪼그리고 앉아 마음으로 보지 않는 이상

영 볼 수 없는 생물들이다.

 

어제는 그렇게 앉아 빵을 먹다가 작은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 구멍으로 개미들이 들락거린다

그래서 흙을 가져다가 구멍을 꼭꼭 막아 버렸다. 내일 다시 거기에 구멍이 뚫렸는가 확인해야지

한다는게 오늘 잊었다. 지금 생각이 난다. 개미들은 입구가 폐쇄된 것을 알고 다른 구멍을

개척했을까?

옛날 베르나르 베르베른가? 그이의 소설 개미를 읽을 때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은 기억이 난다.

올해는 뱀도 많아서 길가다 여사로 볼 수 있는게 뱀이다.

껍데기가 푸르딩딩한 뱀이 몸을 말리느라 아스팔트 길 중간에 버젓이 누워 있는 꼴도 몇 번이나

봤다. 그녀르 뱀은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무서와. 열 번보면 열번 다 놀래고, 뒤 돌아 보면서

한 번 더 놀래는게 뱀을 발견했을 때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종일 다물었던 입이 뻥긋 열리면서 말들은 봇물이 터진 것처럼 좔좔 쏟아져 나온다.

말이 고픈 하루.

포도밭이 수다에 어디로 떠내려 가는 지도 모르고 얘길 하다가 나중에 새끼댕이 가지고 가서

삐끄러매고 꺼 올린다.(믿거나 말거나)

 

오늘은 포도밭 바로 앞의 산에서 종일 산판작업이 있었다

기계톱 돌아 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작업 소리가 산에 쩌렁쩌렁 울렸다.

시동생은 같이 순 지를 생각은 안하고 혼자서 토종벌통만 들여다 보고 집으로 간다

일하다 어찌 부애가 나던지 혼자 씩씩거리고 있는데 마침 고서방이 전화가 왔다

"점심먹으로 와야지. 나도 집으로 들어갈게"

일테면 내 점심보다 자기 점심 차려주러 집으로 들어 오라는 얘기다

부애가 난 심사에다 기름을 치지직 붓누나

전화기에다 대고 시동생 험담을 한다.

"아이, 일이 이렇게 바쁜데 벌통이 문제야. 빨리 순부터 질러야지"했더니

"그래도 밥은 먹고 해야지"한다

"밥도 먹고 싶덜 않고만!"하고 쌩파리 좆모냥 엥도라진 소릴 톡 쏘아대니 전화를 시르르 끊는다

만만한기 홍어 머시기라고, ㅎㅎㅎㅎㅎ 고서방도 그렇게 당할 때가 있구낭.

 

집에 와서 밥 차려 주고, 엄니도 같이 드시자고 하니 어머님은 밥 몇 숟갈 떠서는 콩고물에

비벼 드신단다. 밥 차려 놓았는데 따로 떠서 방에 가져가 콩고물에 비빈다고 밥 숟가락 달각거리는

소릴 들으면 또 가라 앉은 마음에 은근히 심사가 싸나와지지.

그래도 또 한장 접는다. 알타리김치 담은걸 작게 썰어서 물과 같이 따로 방으로 갖다 들인다.

 

화가 났다가도 찔레꽃 보고 풀고, 또 심사가 사나와졌다가도 고스방이 히죽 웃어주니 그거 보고

또 풀고, 은근히 부애가 나다가도 님이 사준 빵을 새참으로 먹으며 가라 앉힌다.

하루에도 몇 번 죄를 지었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죄에다 물을 부어 사면을 시킨다.

그게 나다.

나무 앞에 조신허게 앉은 덜 떨어진 상순인게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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