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그날 저녁 내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고 그렇게까지 통곡할 일은 아니였다.
28일 새마을 영동군 총회를 다녀 온 날, 통곡의 씨앗은 뿌려졌다. 몹시도 추웠던 세밑 그날.
관변단체라는 새마을 부녀회의 일은 아무리 다른 소리를 갖다 붙여도 저 이미지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새마을이 생겨난 유래와 활동을 여기에서 나열하는것은 별 의미가 없고 그 날도 한 해동안 관의 들러리 노릇 한 것을 치하하는 작은 공로상과 점심 한 끼 먹는 일로 행사의 모든 것들이 끝이 났다. 날씨가 얼마나 춥던지 적당히 집 안에 박혀만 있다가 나온 촌로들이 무두 시퍼리둥둥한 얼굴이 되었다. 썽그런 뷔페식에 소주 한 잔 들이부어 위하여를 몇번이나 하고 난 뒤에야 겨우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꼴란 자전거 한 대씩을 면마다 경품으로 걸어 놓고는 노래 한 곡 하고 나면 자전거 한대를 추첨으로 나눠주고 있었다. 마지막 즈음 우리 면의 노래가 끝나고 고생한 목화실 아지매가 자전거 한 대를 타는 걸로 그날의 행사는 마쳤는데, 군 단위 행사가 끝나고 모두 면사무소로 돌아 온 사람들이 송년회까지 하고 가자며 삼겹살에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다.
자전거를 탄 아지매가 오늘 기분인데 2차는 내가 쏜다 하여 일동 썰렁한 단란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삼겹살에 덧붙인 소주의 기운으로 얼굴들은 화기애애 볼그족족한 색이 돌고, 하염없이 벗어재낀 여자들이 젖이며 엉덩이며 다 드러낸 화면을 벽면 가득 풀어 놓은 단란주점의 노래방 무대는 업무를 마치고 가세한 면장까지 불콰한 얼굴로 분위기를 돋우는 바람에 그야말로 송년망년 그 자리에서 다 해묵게 생겻다.
어딜 가나 노래방 체질은 따로 있는 듯, 평상시에는 조용한 아지매가 노래방 끼를 주체를 못하고 풀어재끼니 고무된 사람들의 기분은 격앙으로 상승 무드를 타고 씨원한 맥주잔에 넘치도록
부어지는 보리술은 잠잠하던 위장에 요동의 물결을 제공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취해갔고 일년의 고달픈 노고를 다 털어 낼듯 몸들을 흔들었다.
주는 대로 술을 다 받아 묵다 보니 나도 조금 혼미하다. 까짓 보리술 몇 잔이야 취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마는 흥에 겨웁다보니 열이 팍팍 난다. 의자에 조금 앉아 사람들의 하는 양을 쳐다만 보는데 그가 다가왔다. 뭐라고 한 마디 건네는데 시끄러운 노래소리 때문에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뭐라구요?"
"내가 당신 좋아한다구"
피식.. 좋아하는거야 내 책임 아니다만, 웅석이가 알면 난리날 껄?
그는 남편 웅석이의 동기동창 친구다.
집에서 연신 전화가 오고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오다.
집에 오니까 어머님의 얼굴이 밝지 않으시다. 국을 끓이고 아홉시쯤 들어오신 아버님 저녁을 드리고 어머님도 그 때 같이 드실려고 밥그릇을 가지고 밥통 쪽으로 가신다.
내가 떠 드린다고 그릇을 잡으며 "제가 떠 드릴게요"하나 막무가내시다.
나는 제가 떠 드릴게요 하고 곱지 못한 소리가 나간다. 그러면서 덧붙인게 "하루 행사가 있어 나갔다 왔는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세요!"
그러고는 입을 닫았다. 기실 어머님이 그러시는거야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닌데 나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화난 기분을 유지시킬려고 아예 입을 닫은 것이다.
속아지도 못 땠지. 곰곰 생각해 보면 화를 낼 문제는 어머님의 반응이 아니다.
어련 남편있는 여편네에게 그런 말을 귓가에 바싹 붙여 말을 하는 그에게 화가 나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 말도 안 해놓고 집구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뭐라 설명할 수없는 찜찜함을 매달고 들어와서는 어머님의 반응에 발칵 화를 돋우고 만 것이다. 에잉 덜 떨어진....
30일 저녁,
이틀 동안 집구석의 썰렁한 분위기를 눈치챈 웅석이 어머님 방으로 나를 부른다. 어머님께서는 새초롬히 누우셔서 바로 보시지도 않는다. 웅석이의 한바탕 굿판이 시작되었다. 이틀 동안 엄마와 여편네 사이의 눈치를 가늠하느라 신경꽤나 썼다는 감상문을 씨파, 씨파 소릴 섞어서 열을 내고 있다. 으이고...이 양반아 나는 16년을 눈치보며 살았는데 당신은 이틀 눈치본다고 그렇게 뒤집어지냐. 웅석이가 나가고 난 뒤
"어머님 제가 잘못 했어요. 제가 승질이 더러워서 그랬네요. 좀 편안하게 생각하면 됐을텐데"
그렇게 사과를 하고는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속에서 치받쳐 올라오는게 도저 방구석에 앉아 잇을 수가 없다. 겉옷 걸쳐입고는 무작정 몇 만원 꾸셔 넣어서 나오니 갈 곳이 없다. 결혼 하고 16년을 여기 살면서 이런 상황으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한참으로 생각없이 걷다가 친구가 하는 족발집으로 갔다. 그 친구가 늘 하는 말, 애인은 만났는데 술 한 잔 할데가 없으면 우리집으로 와 방 내어줄게. 그 생각이 퍼뜩 나서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혼자서 배달 나갈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가 날 보더니 깜짝 놀란다. 하루 종일 굶은 속에다 소주 한 병 달라 해서 먹고는 배달 다녀온 친구와 한 잔 하면서 통곡을 하였다.
'맨날, 허허...웃고 살아 우리처럼 쏙 아픈 일은 영 없는 줄 알았재.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려"
그렇게 날궂이를 하고 더 이상의 속상함은 털어 버리고 묵을 해를 보냈다. 그리고 신년
초하룻날 부녀회 연합회장이 전화를 했다.
"총무, 철수아버지가 다쳤데. 손가락이 박살이 났다네. 하우스 파이프 펴는 작업을 하다가 롤러에 손가락이 끼였대나 어쨌데나...경운기 산에서 굴러 갈빗대 나간지 얼마 됐다구 또 그렇게 다쳤네. 사람이 겨울이면 좀 가마이 앉았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바지런한지 잠시라도 가마이 있들 못해. 농사꾼이 손가락이 그렇게 바스라졌으니 이제 어떻게 일을 하노....."
회장님의 걱정은 전화기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문병을 가봐야 되겠재? 병원이 대전이라는데..."
"예 그러지요"
병원에 가니 그는 말끔하게 씻고 수술한 오른 손을 팔걸이에 걸어 수척하게 앉아 있다
냠냠하게 생긴 그의 안식구가 들어서는 우릴 반긴다.
다친 경위가 환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나는 병상에 매달린 환자카드를 본다
입원 일자 2004. 12. 30
친구네 족발집에서 누구랑 한 잔 할까 설핏 떠 올린 인물이 바로 그다.
그러나 이 좁은 동네에 그림자조차 그 모습이 도출되면 무슨 소문이 날지 모르는데싶어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그는 바로 그날 로라에 끼인 손을 빼기 위해 처음의 아픔은 둘째치고 되돌려 손가락을 빼내면서 바작바작 제 손가락 부서지는 소릴 맨정신으로 들었단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말하며 진저리다.
그걸 비끼운 자리에 앉아 쳐다 보는 내 맘은 그저 짠하고 짠하기만 하다.
결국 28일 저녁, 그가 내 귓가에 큰 소리로 이야기 하던 그 말.
"나는 당신이 좋아" 그 한 마디
그것 때문에 나는 기분이 찜찜했고, 그래서 어머님과 다툼이 있었고, 부아를 삭히려고 나간 자리에서 그를 생각했고, 그는 그 날 다쳐서 바스라진 손가락뼈를 붙이느라 수술을 몇시간이나 하고, 나는 부아보다 더 큰 슬픔과 설움에 통곡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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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산스크리트어: pratitya-samutpada, 팔리어: paticca-samuppa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껐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가?"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 (paticca)함께 (sam)일어난다(uppa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떤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 중
28일 새마을 영동군 총회를 다녀 온 날, 통곡의 씨앗은 뿌려졌다. 몹시도 추웠던 세밑 그날.
관변단체라는 새마을 부녀회의 일은 아무리 다른 소리를 갖다 붙여도 저 이미지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새마을이 생겨난 유래와 활동을 여기에서 나열하는것은 별 의미가 없고 그 날도 한 해동안 관의 들러리 노릇 한 것을 치하하는 작은 공로상과 점심 한 끼 먹는 일로 행사의 모든 것들이 끝이 났다. 날씨가 얼마나 춥던지 적당히 집 안에 박혀만 있다가 나온 촌로들이 무두 시퍼리둥둥한 얼굴이 되었다. 썽그런 뷔페식에 소주 한 잔 들이부어 위하여를 몇번이나 하고 난 뒤에야 겨우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꼴란 자전거 한 대씩을 면마다 경품으로 걸어 놓고는 노래 한 곡 하고 나면 자전거 한대를 추첨으로 나눠주고 있었다. 마지막 즈음 우리 면의 노래가 끝나고 고생한 목화실 아지매가 자전거 한 대를 타는 걸로 그날의 행사는 마쳤는데, 군 단위 행사가 끝나고 모두 면사무소로 돌아 온 사람들이 송년회까지 하고 가자며 삼겹살에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다.
자전거를 탄 아지매가 오늘 기분인데 2차는 내가 쏜다 하여 일동 썰렁한 단란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삼겹살에 덧붙인 소주의 기운으로 얼굴들은 화기애애 볼그족족한 색이 돌고, 하염없이 벗어재낀 여자들이 젖이며 엉덩이며 다 드러낸 화면을 벽면 가득 풀어 놓은 단란주점의 노래방 무대는 업무를 마치고 가세한 면장까지 불콰한 얼굴로 분위기를 돋우는 바람에 그야말로 송년망년 그 자리에서 다 해묵게 생겻다.
어딜 가나 노래방 체질은 따로 있는 듯, 평상시에는 조용한 아지매가 노래방 끼를 주체를 못하고 풀어재끼니 고무된 사람들의 기분은 격앙으로 상승 무드를 타고 씨원한 맥주잔에 넘치도록
부어지는 보리술은 잠잠하던 위장에 요동의 물결을 제공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취해갔고 일년의 고달픈 노고를 다 털어 낼듯 몸들을 흔들었다.
주는 대로 술을 다 받아 묵다 보니 나도 조금 혼미하다. 까짓 보리술 몇 잔이야 취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마는 흥에 겨웁다보니 열이 팍팍 난다. 의자에 조금 앉아 사람들의 하는 양을 쳐다만 보는데 그가 다가왔다. 뭐라고 한 마디 건네는데 시끄러운 노래소리 때문에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뭐라구요?"
"내가 당신 좋아한다구"
피식.. 좋아하는거야 내 책임 아니다만, 웅석이가 알면 난리날 껄?
그는 남편 웅석이의 동기동창 친구다.
집에서 연신 전화가 오고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오다.
집에 오니까 어머님의 얼굴이 밝지 않으시다. 국을 끓이고 아홉시쯤 들어오신 아버님 저녁을 드리고 어머님도 그 때 같이 드실려고 밥그릇을 가지고 밥통 쪽으로 가신다.
내가 떠 드린다고 그릇을 잡으며 "제가 떠 드릴게요"하나 막무가내시다.
나는 제가 떠 드릴게요 하고 곱지 못한 소리가 나간다. 그러면서 덧붙인게 "하루 행사가 있어 나갔다 왔는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세요!"
그러고는 입을 닫았다. 기실 어머님이 그러시는거야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닌데 나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화난 기분을 유지시킬려고 아예 입을 닫은 것이다.
속아지도 못 땠지. 곰곰 생각해 보면 화를 낼 문제는 어머님의 반응이 아니다.
어련 남편있는 여편네에게 그런 말을 귓가에 바싹 붙여 말을 하는 그에게 화가 나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 말도 안 해놓고 집구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뭐라 설명할 수없는 찜찜함을 매달고 들어와서는 어머님의 반응에 발칵 화를 돋우고 만 것이다. 에잉 덜 떨어진....
30일 저녁,
이틀 동안 집구석의 썰렁한 분위기를 눈치챈 웅석이 어머님 방으로 나를 부른다. 어머님께서는 새초롬히 누우셔서 바로 보시지도 않는다. 웅석이의 한바탕 굿판이 시작되었다. 이틀 동안 엄마와 여편네 사이의 눈치를 가늠하느라 신경꽤나 썼다는 감상문을 씨파, 씨파 소릴 섞어서 열을 내고 있다. 으이고...이 양반아 나는 16년을 눈치보며 살았는데 당신은 이틀 눈치본다고 그렇게 뒤집어지냐. 웅석이가 나가고 난 뒤
"어머님 제가 잘못 했어요. 제가 승질이 더러워서 그랬네요. 좀 편안하게 생각하면 됐을텐데"
그렇게 사과를 하고는 방에 들어가 앉았는데 속에서 치받쳐 올라오는게 도저 방구석에 앉아 잇을 수가 없다. 겉옷 걸쳐입고는 무작정 몇 만원 꾸셔 넣어서 나오니 갈 곳이 없다. 결혼 하고 16년을 여기 살면서 이런 상황으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한참으로 생각없이 걷다가 친구가 하는 족발집으로 갔다. 그 친구가 늘 하는 말, 애인은 만났는데 술 한 잔 할데가 없으면 우리집으로 와 방 내어줄게. 그 생각이 퍼뜩 나서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혼자서 배달 나갈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가 날 보더니 깜짝 놀란다. 하루 종일 굶은 속에다 소주 한 병 달라 해서 먹고는 배달 다녀온 친구와 한 잔 하면서 통곡을 하였다.
'맨날, 허허...웃고 살아 우리처럼 쏙 아픈 일은 영 없는 줄 알았재.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려"
그렇게 날궂이를 하고 더 이상의 속상함은 털어 버리고 묵을 해를 보냈다. 그리고 신년
초하룻날 부녀회 연합회장이 전화를 했다.
"총무, 철수아버지가 다쳤데. 손가락이 박살이 났다네. 하우스 파이프 펴는 작업을 하다가 롤러에 손가락이 끼였대나 어쨌데나...경운기 산에서 굴러 갈빗대 나간지 얼마 됐다구 또 그렇게 다쳤네. 사람이 겨울이면 좀 가마이 앉았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바지런한지 잠시라도 가마이 있들 못해. 농사꾼이 손가락이 그렇게 바스라졌으니 이제 어떻게 일을 하노....."
회장님의 걱정은 전화기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문병을 가봐야 되겠재? 병원이 대전이라는데..."
"예 그러지요"
병원에 가니 그는 말끔하게 씻고 수술한 오른 손을 팔걸이에 걸어 수척하게 앉아 있다
냠냠하게 생긴 그의 안식구가 들어서는 우릴 반긴다.
다친 경위가 환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나는 병상에 매달린 환자카드를 본다
입원 일자 2004. 12. 30
친구네 족발집에서 누구랑 한 잔 할까 설핏 떠 올린 인물이 바로 그다.
그러나 이 좁은 동네에 그림자조차 그 모습이 도출되면 무슨 소문이 날지 모르는데싶어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그는 바로 그날 로라에 끼인 손을 빼기 위해 처음의 아픔은 둘째치고 되돌려 손가락을 빼내면서 바작바작 제 손가락 부서지는 소릴 맨정신으로 들었단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말하며 진저리다.
그걸 비끼운 자리에 앉아 쳐다 보는 내 맘은 그저 짠하고 짠하기만 하다.
결국 28일 저녁, 그가 내 귓가에 큰 소리로 이야기 하던 그 말.
"나는 당신이 좋아" 그 한 마디
그것 때문에 나는 기분이 찜찜했고, 그래서 어머님과 다툼이 있었고, 부아를 삭히려고 나간 자리에서 그를 생각했고, 그는 그 날 다쳐서 바스라진 손가락뼈를 붙이느라 수술을 몇시간이나 하고, 나는 부아보다 더 큰 슬픔과 설움에 통곡을 하고...
====================================================
"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산스크리트어: pratitya-samutpada, 팔리어: paticca-samuppa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껐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가?"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 (paticca)함께 (sam)일어난다(uppa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떤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