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죙일 눈 내리고, 눈 녹고 하는 사이 결혼 19주년이 지나갔다
화려할 것도 남다를 것도 없는 19년전 결혼식, 그날도 황간면 동일예식장 앞은 진눈개비가 흩뿌렸고 예식장 낡은 계단을 올라오는 구두창에는 진흙인지 쪼대흙인지 모를 것들이 같이 붙어 계단을 올랐다.
화장이라고는 츠자적에 해 본적이 없는지라 처음한 신부화장은 들떠서 얼굴이 어릿광대처럼 희덕서그리한게 군데군데 방점처럼 색조화장이 들떠서는 다라이물에 뻥과자 부스러기 불었는것처럼 지들끼리 둥둥 떠 놀았다.
새벽에 여섯시가 되니 내 핸드폰이 드르륵 떨리면서 문자가 들어왔다. 대구 외갓집에 가 있는 딸이 엄마 에게 문자를 보내 온 것이다. 뭐 그 시간에 지가 벌떡 일어나 문자를 보냈겠냐. 그게 예약을 해 놓았으니 통신회사에서 알아서 보내준 거지. 그래도 고맙다. 잊어버리지 않고(저는 잊어먹었겠고 통신사에서 기억을 했겠지) 문자를 보내주니 말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와도 고스방은 아무 말이 없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와서는 콩나물 사다 놓은 것을 보더니 우짠 일인지 밥통에 밥을 안 먹고 콩나물 밥을 해서 먹잖다. 콩나물밥은 온 식구가 다 좋아하는 것이라.
눈은 내리고 반찬거리도 션찮은 이런 날은 콩나물밥해서 양념장 얹어 부분부분 나물하고 밥하고 살살 일궈가며 비벼 먹는 것도 괘안타. 쌀을 씻어 얼른 앉히고 간장 만들고 김장김치 송송 썰어놓고 준비하는 동안 콩나물 밥이 다 되었다. 상을 차려 아버님, 어머님하고 같이 먹으니 잘 드신다. 고스방은 넓은 비빔그릇에 밥을 퍼주니 어쩐일인지 밥을 덜어 어머님 그릇에 갖다 얹는다. (어라, 다이어트 할래고 그래나? 콩나물비빔밥 억시기 즐기는데?)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도 다시 일 하러 안 나가고 미적거린다. 티비 보는 고스방 앞에 퍼대지고 앉아서 실쩌기 한 마디 흘린다.
"당신은 문자 안 받았세여? 상민이가 아빠한테도 문자 보냈다고 하던데..."하며 은근히 결혼기념일임을 눈치주니 고스방 왈,
"문자는 무슨 문자?"
하기사 아직도 문자 볼 줄도 모르고 쓸 줄은 더더군다나 모르니까 이녀르꺼 문자가 왔는지 할애비가 왔는지 알게 뭐냐다.
"함 봐바요, 상민이가 문자 보냈다는데.."하며 괴춤에 차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서 내가 문자를 열어 딸래미 문자를 확인한다. (어이구나 문자통에 200통이 꽉찼다는 메시지가 뜬다. 그거 삭제 할 줄도 모르니까 쩝)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고 계속 잘 살아요^^>라고 적혀 있다
그걸 보고 고스방,
"에이 여편네, 내가 어련히 알까바 꼭 이렇게 먼저 얘길해요"
"잉? 알았어요?"
"니가 나를 일이년 겪어보나. 밥 먹고 살째기 둘이 나갈라 했더만 이렇게 복을 까불어요"
"으헝...나갈라구 그랬어요. 에고 내가 쪼매만 참을걸 그랬네"
"하여간 김새게 하는데는 뭐가 있다니까 이 이핀네"
"어딜갈건데요 예?"
"직지사나..."
'꺄호!! 꿈에나 그리던 그 직지사를 눈 오는 이 밤에 가잔 말이지'
마루에 안자 둘이서 방 안에 아들놈이 들으까바 눈짓으로 환호를 주고 받고 있다.
방에 들어와 아들놈 눈치를 보니 이상하게 피곤하다면서 일찍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있다.
하늘이 도와주고 아들놈이 눈치없이 따라 나선다고 하지 않고 재우지 않아도 스스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으니 이런 천운이 어디있단말인가.
서둘러 입은 채로 웃도리만 걸치고 나간다.
눈은 펑펑펑 쏟아진다. 날은 춥지 않아 내린 눈은 금새 아스팔트 온기 위로 스러진다.
여편네 태워준다고 고스방은 콩나물밥 하는 동안에 차를 싸악 닦아 놓았다.
눈 오는데 차 닦으면 그게 뭔 소용이 있냐마는 고스방 마음은 그렇지를 않는거다.
19년전에 천방지축 츠자 하나 어른 만든다고 그 날도 차를 싸악 닦아 놓고 나를 기다려 식을 하고는 그 차에 나를 싣고 남쪽으로 달렸다.
오늘도 고스방은 영업용 택시지만 발판까지 깨끗하게 닦아서는 나를 태우고 김천으로 간다.
황간 주차장을 채 못 벗어나서 맞은 편에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얼굴을 끌어 당겨 뽀뽀를 한다.
"옴마나 와 그래싸요 눈 오는데 운전 잘 해야지 길 미끄럽꾸마"
이 나이에 스방이 기습 뻐뻐를 한다고 부끄러울게 뭐가 있나 그러나 말인따나 그렇게 한다.
"에이 앙탈은...다시 한 번!"
얼래 이 양반 아주 신이 났구만..차는 우리가 뻐뻐를 세번 하는 사이에 넓고 쫘악 곧은 국도 사차선으로 진입을 한다.
"어데가서 뭘 좀 먹을까?"
"저녁 먹었는데 배에 또 뭐가 들어가것어요?" 첫마디는 이렇게 떼면서도 <간단하게 회 먹으러 갈까>하고 대답을 한다
"그래, 그러자 거기서 소주 한 잔 먹어야 상순이가 도발적이 되지 으흐흐흐"
"도발은 무신 도발씩이나.."
"아, 술 한 잔 먹으면 기분이 좋아서 상순이가 씩씩해질지 누가 알어?"
고스방은 연신 혼자만 아는 웃음을 흘린다.
차안이 비잡도록 고스방과 그의 여편네는 연신 실눈에 웃음 매달고 웃어쌌는다 아따 입 찌저지것어.
손님들이 어지간히 먹고 돌아가는 판에 우리는 새로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분이시니껴?"
손가락을 두 개 치들며 "두 사람"이라고 나는 대답을 한다
작은 모듬회 하나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는 고스방과 굴을 까먹고 과매기를 쌈싸먹고 계란찜을 폭폭 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상순이 한 잔 받으라"
술을 안 먹는 고스방은 내 잔에다 연신 술을 따른다.
넉 잔을 먹으니 얼굴이 뽈구똑똑하다.
화악 술이 오른다.
회를 먹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홉시가 넘었다
눈은 바람을 타고 빙빙 돌고 있다.
직지사 입구는 썰렁하였다.
눈만 폭폭 내려주었으면 젊은아아들이 많이 올 것인데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리니 한적하다
예전에 자주가던 경동식당도 문을 닫았고 낡은 기념품가게 하나와 편의점만 불을 밝히고 있다.
"모텔에 들어가서 뭐라고 하지?"
"영업용 차 타고 가면 뭐 기사가 여편네 하나 꼬셔서 델고오나부다 하겠지"
"잉? 그게 아닌데"
"그게 기던 아니던 우리가 거길 가면 조바아줌마가 보는 시선을 똑같애. 거기다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쉬었다 간다는데 누가 뭐래도 우린 불륜커플이야 ㅎㅎㅎ"
<불륜커플>이라는 말에 고스방이 화들짝 놀랜다. 자기는 결단코 아닌데 억울한 누명을 쓴 것처럼 놀랜다. 근데 여보, 안내에 앉은 아줌마는 절대 우리보고 불륜인가 부부인가 안 물어 보거등요. 무슨 답을 해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시요
김천 직지사 공원안에 새로 생긴 모텔 샤르망.
"근데 잠깐 쉬었다 간다하면 몇 시간이 기본이지?"
"쉬었다 가는거에 뭐 기본시간이 있을라구 대개 한 두시간이겠지"
"어, 나는 이산(드라마)도 봐야하는데"
"그럼 씻고 이산 보고 쉬었다 나오면 되지"
"그럼 한 시간이 넘을거 같어"
"세시간쯤 쉬면 얼마냐고 물어 보지 뭐"
그러나 모텔 샤르망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안내 앞에 서서 유리문을 똑똑 두드리니, 우리가 차를 타며 걱정했던 모든 질문과 답을 딱 두 마디로 아줌마는 끝내버렸다.
"자고 갈거요 쉬어 갈거요"
"안 잘건데요...."하며 고스방이 말 꼬리를 흐리자,
"이만원"
삼만오천원쯤 안 하겠나, 세시간쯤 쉬면 오천원을 더 줘야하는건가 어째야 하는건가 조마조마 하던 고스방의 얼굴에 무궁화꽃이 피었다 이만원요?
열쇠를 받아서 껌껌한 복도를 걸어가며 고스방이 나를 쳐다보며 히죽 웃는다
"상순아, 이만원이란다. 자주 와도 되겠따~~"
문 열고 들어가서 씻고, 이산 보고, 그 담에 뭘 했는지는 백석의 시에 나오는 당나귀 울음소리에게 물어보라.
그나저나 고스방
그 동안 사니라고 어지간히 마음 졸였네 그려.
여편네 델고 여관가서 마누래 감창소리 맘껏 내지르며 그거 한 번하는게 소원이였는데, 그걸 십구년이나 미루며 살았으니 얼마나 속이 씨라렸겠는가 좁은 집구석 시부모님, 아이들 방,얇은 벽사이를 넘어가는 소릴 틀어막느라고 한참 신나는 판국에도 등때기에 식은땀이 흘렀을 고스방. 그래 오늘 밤 그 소원을 풀었으니 쏙이 시원한가 응?
눈 맞는다며 차 시동 걸동안 처마 밑에 있으라며 고스방은 차를 향해 뛰어간다.
차를 돌려 내 앞에 세우며 타라고 손짓 한다.
쪼뱅이 어서 타.
집에 와서 둘이는 꿈도 없는 잠을 잤다.
소원을 이뤘으니 꿈조차.......먼발치에서 웃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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