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먹고 쓰는 편지

편지- 천랑성, 상계동, 조정근 신부님

황금횃대 2009. 5. 30. 08:55

 

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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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일은 지금부터 한창 바빠요

먼데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는데도 나는 답장 쓸 여유가 없습니다. 예전에 나는 `편지 쓸 짬(여유)가 없다`는 말을 잘 이해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그게 이해가 됩니다. 종일 종종거리고 다니지만 글줄 한 줄 읽질 않아요 그러니 무얼 쓰겠습니까.

받아보던 신문도 접힌 면을 펼쳐 보지도 않은 채 쌓여 갑니다.

유월에는 신문을 끊어야지..하고 속다짐을 하지요.

 

작업복 바지가 몇 년 입어 색이 바랜 탓도 있지만 종일 흙 우에서 흙먼지와 복닥이니 나는 얼굴도 흙빛, 엉덩이도 흙물이 들어갑니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얼굴이야 어쩔 수 없더래도 차양 모자에 목수건에 땀내나는 공략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은 침투하는 볕에 가차없이 그을려 갑니다. 씽크대 작은 공간에 손바닥만한 거울이 붙어 있는데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동그란 거울 속에 얼굴이 들어차면 손길 놀리는걸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봐요, 친정 엄미가 지금의 내 얼굴을 보신다면 안타까와 혀를 끌끌 차시겠지요. 버스를 타면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내 손과 하얀 아가씨 손이 너무나 흑백 ㄷ비가 되어 슬그머니 손을 놓아요. 속으로야 그러재요, '하~참내, 일하는 손이 이렇게 거칠고 투박하기 여사지 그걸 뭘 부끄러워하느냐고' 알아요.. 나도 이젠 전문가여서 스스로의 비애에게 멋진 명분을 갖다 붙이며 위로 할 줄 알아요.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 흙빛이 되는 얼굴에 슬몃 부아가 둗기도 해요. 어쩔 수 없어요.

 

고요한 산 속 포도밭에서 말 한마디 띄울 일없이 일하는데 안부 문자가 오면 어깨라도 반갑게 치며 말을 건네받은냥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2009/ 5/29 

                                                                                  상순 

 

편지 2.

 

 

 

 

포도밭 가는 길 오른쪽을는 찔레꽃이 피었어요

검은 그늘이 남 먼저 들어오는데도 찔레는 햇볕으로 환하게 핍니다.

편지를 받고 몇 날이 지난지 두 손으로 셀 수가 없을 만큼의 날들이 지났는데 게으른 여편네는 이제서야 답장을 씁니다.

 

바쁜거야 촌구석에는 해마다 이맘 띠쯤이면 늘 있어오ㄷㄴ 일이라 새삼스럴 것도 없는데, 어찌된 셈인지 나는 기억 상실증이 살짝 온 것처럼 편지 쓰는 일을 못했습니다. 편지를 받고도 마음 한켠에 묵지룩한 답장의 무게만 간직한 채 아모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예전에 내가 틀림이 없는데, 그렇다고 한글로 쓰는 걸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멍하니 있었습니다. 하도 글자를 쓰지 않으니 지금 이렇게 몇 자 쓰는데도 힘이 듭니다. 습관이란 무서운거지요. 대충 키보드에 편하게 글을 쓰다가 연필이나 볼펜을 잡고 종이를 눌러가며 글씨쓰는게 이렇게 임이 들어가는 일이구나..새삼 깨닫습니다.

 

들판에 나가 흘 우에 퍼질고 앉아 무얼 심고 있으면 아모 생각이 나들 않어요. 그냥 호미로 비닐 멀칭에 구멍을 콕`내서 고구마순을 차례차례로 넣고, 물조리에 물을 퍼와 고구마 순에 일정양의 물을 주고 또 밭 고랑에 걸터 앉아 흙을 떠붓고...이런 일년의 농사짓는 과정이 잡다한 생각을 못하게 합니다.

덕분에 나는 많이 단순화되어서 가끔은 일에서 십까지만 셀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하고 피식 웃습니다. 이렇게 살고 있네요.

 

문득, 내가 신부님께 제일 첨에 보낸 편지에는 뭐라고 꽁실랑꽁실랑 주끼댔을까 궁금한 밤입니다. 건강하십시요

 

 

 

                                                            2009/ 5/ 29   전상순

 

 편지 3

 

 

 

 

예전에는 편지 한 장 쓰는게 우습게 쉽더니만 요새는 그것도 무척 힘 든일 중에 하나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 동안 볼펜들고 중이에 글씨 쓰는 일이 전무했어요

일기도 연초의 결심과는 달라 아즈버님 초상치른 후 며칠까지만 쓰고는 이 또한 무슨 소용이 있으랴싶어 공책을 구석자리로 치웠습니다. 며칠 만에 영수증과 통장 꺼내 놓고 기계가 찍어 놓은 금액을 겨우 가계부에 옮기는 일만 하고있네요

 

종일 밭고랑에 퍼대지고 않아 노니 나는 온몸이 흙빛으로 물 들어 갑니다. 나름 땀내나는 방어로 목수건을 감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해 보지만 가멸찬 빛의 공격을 당해 낼 방법이 없어요. 나라 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으로 애도의 눈물이 끓어 넘치지만 촌구석 사람들은 넋놓고 그럴 새가 없습니다. 포도순은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가 덩굴손이 엉켜버리지, 순의 세력이 너무 좋으면 포도꽃이 날아가버리기도 하니 순의 끝을 잘라 잠시 성장의 기를 꺾어 주는 작업도 해야하니 아주 일거리가 임진왜란에 쳐들어오는 일본군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밤은 작심을 하고 이 작은 종이에 몇 통의 아부 편지를 쓰려고 작정을 하고 빤스바람으로 앉았는데 안 잡던 연필 잡아 종이에 글쓰려니 손목에 쥐가 납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티비만 보고 있는 시어머니야 세월이 지겹도록 안간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는 일주일만에 빨아대는 아들놈 교복바지 세탁이 이렇게 금방금방 돌어오는지 정신이 없어요. 그만큼 마흔 일곱의 내 생도 빠른 RPM으로 돌아간다는 증거겠지요

 

                                                                        2009/ 5/30   전상순 

 

 

졸며 자며 쓴 편지라 조사며 문장 연결되는 부분이 엉망이다. 그러나...이 편지를 그렇다고 내다 버리냐?

ㅎㅎ

포도밭에 일하기 좋으라고 오늘 아침 날씨는 새초름하니 바람 불고 선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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