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먹고 쓰는 편지

2009년 7월

황금횃대 2009. 6. 25. 22:23

 

 

 

 

넘들은 놉을 얻어 포도봉지를 싼다고 난리다

나는 포도순 결속해 놓구선 포도밭엔 가들 못했다.

시동생 혼자 알솎기를 하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

감나무 심어 놓은 밭에도 아직 나무가 어려 간작을 해야하는데

포도밭 결속 겨우 끝내놓구선 여기에만 매달려 있다.

고구마는 이제 원래 순은 모두 고사하고 참새혀만한 새 잎을 내놓더니 이제 도란도란 덩쿨을 둘러내고 있다

콩모종도 모두 욍기심고, 토끼에게 뜯어 먹힌 서리태콩도 살라고 안간힘을 쓰더니 대가리도 없는데다 새 순을

내놓고 있다 이 모든게 신기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풀들은 자고 나면 동네 잔치를 벌리듯 신바람이 나서 커나오고 사람의 손은 미처 닿지 못하여 바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며칠 전에는 오후 그 땡볕에 스뎅 약통을 짊어지고 제초제를 두 통 쳤다.

약통의 무게도 만만찮은데 거기다 물 한 말 넣어 어깨에 울러맬라면 다리가 한 번 휘청하며 어금니를 옹씰물고 강단진 기합 한마디를 뱉어야 구부린 무릎을 펴고 빤듯이 설 수가 있다. 나는 농사꾼이지 농약꾼이 아니야하고 속으로야 외치지만, 하루가 다르게 가지를 뻗어 땅에 닿인 부분마다 흰 뿌리를 완강하게, 결사적으로 박아놓고 번식해가는 바랭이를 볼 때 이건 겁나는 뭐 이런 두려움이 아니다 공포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초제를 친다.

물 한 말에 제초제 타서 어깨끈 끌어 당기며 등에 약통을 을러매면 글쎄, 뭘 짊어졌다고 말해야 그 무게를

제대로 말 한게 될까? 지구? 아니다, 이건 현실감 없는 무게다, 나락 한 푸대 울러맸다고 하면 그 무게의 느낌을 말한게 될까? 아니다. 그건 배 부르게 하는 양석이라 실제 무게보다 기분이 작용하여 내가 말하는 그 약통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 한 없이 한 없이 절망인 어느 저물녁, 돌아 갈 곳도 없는 발걸음에 매달린 시름의 무게쯤이나 될까..하여간 세상의 물질을 얹어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무게.

 

들깨모를 심는다.

들깨모는 초복 오기 전까지만 심어도 가을에 들깨를 먹는다니, 모종으로 옮겨 심는 것은 들깻모가 마지막 작물이 된다. 하우스 얘기야 나는 모르고. 그냥 어디까지나 노지 농사얘기다.

골안 수미엄마가 들깨모를 많이 부어서 한 다라이 뽑아서 심으라고 갖다 주었다. 그 정성이 고마와 성냥개비보다 가는 들깨를 서너개 모둬쥐고 심어 나간다.. 딸이 큰 우산을 가져와서 엄마 심어 나가는데 그늘을 만들어준다. 훨씬 덜 덥다. 늦잠자서 밉다가도 이럴 땐 이뿌기가 하늘이다. 한참을 심어나가면 쉬었다하라고 옷자락을 끌고, 얼음물을 따뤄서 갖다준다.

 

어제는 청원군에 있는 자치연수원에 가서 하루종일 교육을 받고 왔다. 오랜만에 조동춘씨 강의를 듣는다

세월은 그 누구에게도 가차가 없다.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오는데 어찌나 몸이 뒤틀리고 허리가 아픈지, 차라리 땡볕에 앉아 일 하는게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 교육에도 이런데 아들놈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한다. 집에 오면 무조건 쉬라고 해야지 떡볶기도 만들어주고. 그거 한 두개 더 외나 안 외나...점수 일 이점에 대학색깔이 어떻게 된다하더라도....녀석을 끌어 당기며 수고했다 수고했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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