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러 들어 온 고스방이 밥상 채리는 동안 "밭에나 함 갔다 와 보까?"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압력솥에 밥만 앉혀 놓구는 뭘 해서 무울까...생각만 하다가 스방이 밥 무러 오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밭에 간 사이 얼릉 계란찜 한 그륵 해 놓고, 상추 대애충 씻어서 양념 맹글어서 겉절이 해놓고, 그리고 꽃샘이 준 깻잎장아찌를 내놓고, 어리굴젓 접시에 날라리미 깔고, 시래기국 데피놓고..상을 차리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듣기더만 고스방이 뭘 한 아름 들고 들어 온다.
막바지 찰옥수수를 훑어 오고, 벌레 먹은 가지 두 개를 따왔고, 그리고 풋콩을 대궁째 하나 뽑아 왔다. 이파리는 말끔하게 정리를 해서.
밥 먹는 동안 물 얹어서 콩대궁을 폭 쪘더니 희안하게 맛있다. 콩 찌는 동안에도 옛날 옛날 이야기가 돈다.
"서울 시누 젊었을 때 넘의 감자 캐와서 불때는 아궁이에 넣어 꾸워먹고, 콩서리도 엄청 하더니만.."
그 땐 먹을게 없어서 아무거나 먹어도 그렇게 맛있디마는 요샌 뭐 마싯는게 없어..
그 때 먹은 것은 정말이지 아무 첨가물이 없는 천연의 맛, 즉 웰빙 그 자체로 먹었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먹을게 없어서 맛있는게 아니고 자연맛을 먹었으니 맛있을 수 밖에..
고스방은 연신 콩을 까서 입으로 가져간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땅콩보다 더 구시다...하시면서 잘 드신다.
옛날에는 소죽 낋이는 솥에 콩가쟁이째로 얹어 놓고 불 씨게 때면 솥뚜껑 밖으로 눈물이 치익치익 나오면서 김이 뭉실뭉실 기차 연통처럼 뿜어져나온다. 한 참을 그렇게 불 때서 솥뚜껑 열고 보면 콩이 저렇게 맛있게 익어 있다. 폭 익은 콩꼬타리는 손가락으로 살짝 문때도 콩이 톡톡 튀어나오는데 빛깔이며 단맛이 슬쩍 도는 고소한 맛은 콩농사 짓지 않고는 죽었다 깨나도 맛을 볼 수가 없다.
풋콩 삶아 먹다 배꼴만 커지겠네...하는 소릴 뱉으면서도 연신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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