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낮에 금계리 마을 경로당 준공식 행사에 갔더니 동네 이장들이 거의 다 왔다.
삼삼 오오 모여서 요즘 촌구석 최대 관심사인 <감 따고, 감 깎는 일>에 대해 너나 없이 거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 된다.
금계리 마을은 한 군데 모여 있는게 아니구 세 군데로 나눠져 있어서 회관도 세 채나 된다. 부자 동네지? ㅎㅎ
거기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이장 몇몇이 술퍼클럽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여름에 천렵을 하면 따로 불러서 즈그들끼리 매운탕도 낋이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날은 가재를 뺄갛게 구워서 즈그끼리 한 잔하는 뭐 그런 술퍼클럽인 모양이다.
지나가는 말로, 그런 껀수 있으면 나도 불러 달라 했더니만 정말이냐고 묻는다. 당근, 정말이죠. 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날 저녁 바로 연락이 왔다.
오늘은 그냥 우리덜끼리 모여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믄서 ㅌㅈ식당으로 나오란다.
어른들 저녁 얼른 차려 드리고 가겠노라 하고는 저녁상을 보는데 고스방도 마침 들어온다. 이럴 때 서방은
한솥밥 이십여년 같이 먹은 텔레파시영역을 아낌없이 끄집어내며 내 행보에 보조를 맞춰준다. 한 방에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소주 몇 잔을 먹었더니 곧바로 <대따취한다>모드로 돌입을 한다.
빈속에 술 마시는 일은 정말 안 좋은거야. 집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늘어졌다. 속은 또 어찌나 거북한지.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못자고 뒤척이며 불편한 속을 끄르륵거린다.
아침에도 술이 안 깬다. 아..이러면 정말 안되는데. 나이 오십도 안 되서 술을 이렇게 못 이기다니.
술 못먹는 집에 와서 사니 나도 유전인자가 바뀐건가..밤새 뒤척이며 별별 생각을 다한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굳힌 생각이 있다면 이거 참 큰일났네..였다 ㅎㅎ
아이들 학교 보내 놓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설겅설겅 해 놓구 정신을 좀 차릴려해도 도무지 힘이 없다.
속은 여전히 거북거북...할 수 없이 아이들 방에 가서 이불을 덮고 삼십분쯤 잤다. 그래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허 이러다간 영 술에 지고 말것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난다. 누가 관절아픈데 황태하고 파뿌리 고아서 된장으로 간 맞춰 훌훌 마시면 효험을 볼거라는 말을 고스방이 어데서 듣고 와서는 그길로 바로 대관령 황태 주문해서 두 마리 고아서 먹다가 맛이 희안해서 안 먹고 말았는데 갑자기 그 황태가 생각난 것이다.
마른 황태 한 마리 꺼내서 대가리를 뚝 분질렀다.
커다란 곰솥에 물 잡아서는 작정을 하고 무우를 크게 썰어 넣고 대파에 통마늘에 다시마를 넣고 뒤안에 가서 통통한 표고를 한웅큼 따가지고 와서는 설설 끓인다.
황태는 지난 겨울의 설움을 풀어내며 부드러워진다.
문득, 박미라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끓는 동안 가게에 가서 팽이버섯을 사고 미나리 한 단을 사고.
뜨끈뜨끈한 황태탕 한 그릇에 식은밥 한 그릇 말아먹고 나니
등때기에서 보약먹은 땀은 흐른다.
그려, 내 속은 내가 풀어야지.
이마에 땀을 씻어 내며 자리를 턴다.
먼지..
'즐겁게 먹는 막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뎅탕 (0) | 2011.12.15 |
---|---|
콩 (0) | 2011.03.03 |
나 늙으면 느그들도... (0) | 2009.10.12 |
콩대궁 (0) | 2009.09.22 |
해파리냉채 (0) | 2009.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