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거죽장아찌

황금횃대 2009. 10. 25. 15:09

반찬거리가 없으면 냉장고 깊숙히 넣어 둔 병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래야 모두 간장절임 장아찌류들이다.

그제도 막장 반찬거리를 꺼내려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어 병을 꺼네 뚜끼를 딴다.

검은 가죽장아찌가 나온다.

맹물에 짠 맛을 좀 우려내고 마늘에 고추장, 통깨를 넣어 양념을 해서 상 우에 놓았더니.

 

늦게 일어난 고삼 아들 학교 가기 전에 몇 가지 내 놓은 반찬을 뒤적거리다가 가죽무침을 보고는

 

"엄마, 이게 거죽장아찌지?"

 

마루에 앉았던 고스방은 가짢게 웃으며 한 마디한다.

"우예그래 어마이랑 아들이랑 똑같이 코미디를 하노 그 속에서 나온 자슥 아니랠까바"

따라 웃던 내가 그 말 한마디에 샐쭉한다

"거죽이나 가죽이나...뜻은 같네..껍데기 ㅋㅋ"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쯤 범어동에 살 때다.

한 집에 보통 예닐곱집이 옹기종기 살았다.

그저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 거실이란 개념이 없고 부엌 문 열고 들어가면 바로 방이다.

동네 골목 끝집에 마당 넓은 집 절집이 있었다.

진짜 절은 아니고 아저씨가 무얼 좀 봤다.

신수도 보고 사주도 보고..답답할 때 가서 물어 보면 아저씨는 성명 풀이를 해서 무엇이든 해답을 주셨다.

그 집 마당 가장자리에는 군데군데 가죽나무가 있었다.

내가 가죽나무 이파리 맛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였다.

가죽 장떡을 구워서 돌렸는데 울엄마가 한 쪽 얻어와서는 내입에 넣어 주었다.

그 때는 가죽맛이 싫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쌉쓰래한 맛이 났는데 그 후로 나는 가죽나무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렸다.

시집을 오니 대문간에 큰 가죽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가죽나무에 붉은 새순이 나면 어머님은 좀 더 크기를 기다렸다가 찹쌀풀에 양념을 해서

가죽 부각을 만드셨다.

오월 오일은 친정엄마 생일이라, 친정에 애들 데리고 갔다오면 어머님은 가죽부각을 만드신다고

양념찹쌀풀에 적신 가죽순을 빨래줄 한 가득 널어 놓으셨다.

찹쌀풀이 꾸덕꾸덕해지면 그걸 조금 떼서 입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빨래를 널고 걷었다.

바짝 마른 가죽부각을 봉지에 담아 꽁꽁 묶어 두고 아버님 어머님 생신때 잘라서 튀겼다.

그것도 몇 해 하고는 잘 안 먹어서 그만 두고 해마다 가죽 자반을 만든다.

이파리를 하나하나 훑어내고 여린 가지를 손가락 두매디 만하게 똑똑 끊어서는

양념 간장물에 담궈둔다.

간장물이 가죽이파리에 폭 베이면 꺼내서 고추장 양념을 해서 먹는데

가죽향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근처에 가기도 싫던 가죽향을 이제는 입 안에 넣고 즐길 나이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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