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먹고 쓰는 편지

가을 안부들..

황금횃대 2009. 10. 31. 08:55

 

 

1,

" 홍성대액~~"

식구 몇 되지 않아도 이즈음이면 올 겨울 양식량을 가늠해요. 김장은 몇 포기쯤 해야겠다, 고구미는 어느 정도 통가리 안에 저장을 하나, 털어 놓은 콩으로 메주는 몇 말을 쒀야 하나..김장용 소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걸까....뭐 이런.

고작 식구 여섯인데도 한번씩 생각할 때미다 실쩌기 뒷골이 땡기는데 공동체 밥을 준비해야 하는 홍성댁은 얼마나 등줄기가 찌르르할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먹고 사는 '살림'은 하기 싫다고 팽개칠 수가 없고 그것도 농사일처럼 때에 맞춰 준비하고 숙성시켜야 하는 일입죠. 다행히 홍성댁은 밥하는 일이 즐겁다하시니 나는 먼데서 그저 감탄할 뿐.

 

머지 않는 시간에 된서리 내리고 여름 한 철 무성했던 것들이 내년 봄을 기약하며 사그라들겠지요. 대지 속으로 잦아 들었던 것들은 겨울동안 견디는 일을 배우고 봄이면 다시 솟아날겁니다.

그런걸 먹고 쓰고 하는 인간들이니 우리도 씨앗만큼 참고 푸른잎처럼 부지런해야 하는데 쩝, 아쉽게도 그리 못하는 구석도 있네요.

 

가을이 후딱 제 페이지의 색깔을 바꾸기전에 땀 흘리며 여름의 노고를 수학하는 홍성댁에게 살짝 기별합니다, 윙크~~~ *.~

 

 

 

 

2.

"남영 언니~"

얼마나 쫒아 댕겼는가 저녁 때 양말을 벗으면 신을 때 보양 양말 바닥이 깜둥쪽제비처럼 검어요. 가을이라 마른 바람이 이는 탓도 있겠지만 가마히 생각하면 내가 청소를 잘 안하기 때문이라는것.

예전에는 어지간히 쓸고 닦고 했는데 요새는 그런 것도 다 귀찮어요 늙었지요? 헤헤

작은 책꽂이 정리 하다가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시 창작 강의 노트>

유종화씨가 여러 시인들의 시창작노트를 모아서 엮어 놓은 책이예요. 내가 산 책은 아닌데 어디서 내게로 건네 왔을까. 아무리 짐작을 해도 건네 준 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책 한 권 한 권을 참말로 귀하게 생각했는데 이즈음 나를 들여다보면 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못땟고도 나쁜 사람입니다.

보낸이는 내가 이 책을 보고 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책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것을 내게 보낼 땐 또 더하여진 공덕이 있을터인데 나는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살았으니 참말로 염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라도 찬찬히 들여다봐야지요.

 

저녁에 주민자치위원회의에 갔다가 좀 늦게 왔더니 어머님이 저녁을 차려드셨네요. 끼니 띠가 됐는데도 들어오지 않는 며느리가 벌컥 미워졌겠지요? ㅎ

여섯시 이십분쯤 휭하니 날아오니 상을 치우고 계십니다.

"저녁 드셨어요"하고 여쭤보니 "그랫"하고 툭배기 깨지는 역양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엄니 그래도 어쩔수가 없어요. 저는 이제 <나가요 아줌마>가 되었어요' ㅎㅎㅎ 속으로 이렇게 변명을 하지요.

이렇게 하루가 갑니다.

 

 

 

 

3.

부산 아지매~~

가을 안부 한 자락 헐께요

 

잘 때도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났더랬지요

몸을 뒤척일때마다 오래 된 계단을 오르내릴 때의 효과음.

꿈에서는 연장을 들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헤매지요

어쩐셈인지, 급하게 돌리는 꿈속 전화걸기처럼 소리의 발원지는 끝내 못 찾았어요

"딩동댕 딩동댕, 빠빠라빠빠 빠빠라빰~"

온통 쌍비읍 투성이의 서방핸폰 알람이 울리고

어딘지도 모를 곳을 헤매던 꿈에서 퍼뜩 깨어나니

그제서야 현장이 나옵니다.

목줄기를 따라 어깨와 상박골에 이르는 통증 현장!

서방에게 목을 좀 주물라니 엄한 곳을 더듬어준답니다.

제길룡..아픈 곳은 거기가 아니고 목이란 말이요

이 호소는 꿈속의 외침처럼 공허합니다.

 

여기저기 낙엽, 푸대께나 쏟아내는 계절

그대는 몸성희 잘 계시나요

나처럼 연장들고 밤새 헤매지 마시고

늘 건강하시압.

 

 

 

 

4.

임숙씨~

 

이제 어지간히 가을겆이가 끝이 나고 있습니다.

아침 밥하면서 느릅나무 아래 묻어 둔 파 두어뿌리 가지러 갔더니 아침, 옅게 이는 바람에도 느릅나무 이파리들이 빗방울 듯는 소릴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요.

'비가 오나~'했더니 비가 아니고 낙엽 떨어지는 소립니다.

뒤안에는 1차 감입사구 낙하가 끝나고 살구잎이 2차로 떨어집니다. 바람 한 줌 불면 노란 살구잎이 얼씨구나 열바가지쯤 떨어집니다. 장꽝에는 온통 살구잎 잔치가 벌어졌네요 지화자~~

 

고3 아들놈의 시험 날짜가 따박따박 다가옵니다.

내신 괄니 좀 잘해서 수시에 가고 싶은 대학가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마는..공부는 제가 하는 것이기에 괴롭기는 아들놈이 젤 괴롭고 고단하긋지요. 어제는 꽃등심 사다가 구워줬더니 시험이야 어찌됐던 맛있게 먹습니다. 먹는 것도 시원찮게 먹으면 그것도 속상한 일이 될터인데 먹는거 하나는 잘합니다. 그걸로 고맙다 생각하지요.

 

깊어가는 가을이 제 허리를 한번 접으면 계절은 바뀌어 겨울이 오겠지요.

늘 깊은 관심과 따뜻한 위로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식구들과 같이 늘 환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0월 30일 전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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