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대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지"하며 친정 동생들이 설날 전화를 했다. 올 수 있으면 빨리 오라고.
동생들은 맛있는거 사 먹으라며 병조에게 너도나도 봉투를 건네준다. 솔찮게 돈을 모은 병조
집에 와서 장학금 받은 것도 있으니 아버지에게 외식 한 번 하자고 엄마가 졸라 보란다. 고스방에게 전화했더니 열 다섯번 뜸을 들이더니 가잖다 어디로? 추풍령 할매 갈비집으로.
아버님, 어머님....여섯 식구가 고스방 차에 쫑기게 옮겨앉아 식당으로 간다. 명절 연휴 끝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한 끼 밥을 해결하고 있다. 어머님이 멀리 걸어가지 못하시니 바로 문 앞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어머님 거동이 불편하시니 어지간하면 집으로 배달되는 외식만 간간히 할 뿐이지 온 식구가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 밥을 먹는 일은 두 해에 한 번 있을까말까다. 맛있게 먹고 고스방은 차를 바짝 붙여 대겠다는 말만 남기고 계산도 안 하고 간다. 헐~~할 수 없이 아들놈 지갑에 돈으로 계산을 하다. 팔만 팔천원이 나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상민이가 이런다. 우린 나중에 팔만팔천원이란 돈을 지갑에서 꺼내줄 때 돈까스 일인분 먹고 계산하는 것처럼 아무 부담없이 계산할 정도로 돈을 벌자...ㅋㅋㅋ 아놔, 돈이란게 그렇게 니들 맘대로 벌려주는 것이더냐?
2.
대구 가려고 기차를 타고 왜관쯤 갔을 때 고스방이 전화를 했다. 일전에 지장사에서 보내준 우편물 속에 있는 <입춘대길>부적 두장을 찾아 놓으라고. 순간 머리는 망치로 얻어 맞은 듯 아득해진다. 아이구, 그 우편물은 그저께 책상정리하면서 홀랑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벌써 재가 되었는데..
다음 날 저녁 기차로 집에 오니 또 전화가 왔다. <입춘대길>찾아 놓으라고. 태워버렸다는 말은 못하고 안절부절 찾는 시늉을 하다가 또 집구석 시끄러울거 같아 아홉시가 넘어 절에 전화를 한다. 스님에게
이차저차 우편물을 받아 놓구선 제가 어디 단단히 놓아 둔다는게 어디 놓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안 난다며 지금 제가 절로 갈테니 그거 좀 다시 주실수 있는가..하고.
9시가 넘으면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스님이 흔쾌히 그러하마 하신다.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몰아 지장사 절로 갔다. 스님이 <입춘대길>넣은 봉투를 들고 뜨락에 나와 계신다. 그걸 받고는 얼릉 갈 수가 없어 대웅전 올라가 부처님에게 절을 하고는 곧바로 집으로 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상민이다. "엄마 아빠 들어오는데 뭐라고 해? 엄마 찾으면." "약국에 파스 사러 갔다해" 하고 전화를 끊고 조금 오다가, 에이 씨 내가 뭣땀시 이런 거짓말을 해야되노 싶어서 전화를 다시 걸어 그냥 볼일보러 갔다고 해. 파스 사러갔다 하지말고.
집에 들어와 오토바이 세우니 상민이가 창문을 열고 작은 소리로 소리친다. "엄마,엄마, 파스 여기있어 이거 가지고 들어와" 어이쿠...쇼를 하네 쇼를 해. 왜 우린 이 밤중 쇼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쩝.
3.
이월이 시작되었다. 설 쇠고 나니 바로 바람이 부드러워졌다. 묵은 얼음들도 녹기 시작하고.
들판을 바라보니 따뜻한 햇살이 쫘악 깔렸다. 농사꾼들은 보름까지만 밍그적 억지로 놀다가 밭으로 가야지
비료 배급이 나오고, 전지한 나뭇가지를 묶어내고 하는 사이
봄은 성큼, 한 걸음 내 딛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