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포도밭 이야기

황금횃대 2005. 5. 17. 18:49

 

 

 

 

 

단발산 아래 골짝밭 이것이 우리집 포도밭이다

열세개의 논둑을 가진 다랑지 논을 밀어 일곱마지기 무논이 포도밭이 되었다

포도농사 짓자고 시동생과 고스방이 우리를 설득할 때는 무엇이든 놉얻어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에 속아서 동서와 나는 포도농사를 시작하였다. 놉? 놉은 어러주글 놉!

놉 갖다 대기 시작하면 농사란건 수지가 맞지 않고, 그리고 놉 들여 일하면 거칠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동서와 나는 엥간하면 둘이서 허리가 끊어지게 일을 했다. 그러다 제작년부터 동서는 포도밭에서 발을 빼고 학교 급식소로 들어갔다. 결국 나만 봉 된거다. 나는 봉이야?

 



머슴이 고되던 말던 포도순은 봄이 되면 저렇게 가지런히 올라온다

이쁘게 포도꽃을 매달고 하늘을 향해 하룻밤에 뼘가웃씩 자라준다

포도순이 크는 만큼 풀들도 자라, 벌금다지, 명아주, 냉이꽃에 독새풀이 흐드러졌다

하늘 쳐다보며 포도순 따라 일을 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잠시 허리를 굽히는데 그 땐 풀들이 눈에 들어와 그걸 뽑고 있다. 농사꾼은 원래 그런다.

 



요새 내가 포도밭에서 하는 일은 저렇게 두 개가 달린 포도꽃가지의 아랫것을 다 잘라내는 일이다

저것을 육손이라고 하는데 여섯번째 손가락이 난 것처럼 쓰잘데가 없다는 말이다. 야말차게 손톱으로 무질러낸다. 그래야 포도 송이가 튼튼하고 단단하다.

 



육손을 따면서 잎과 가지 사이의 옆순도 따 내줘야 한다. 육손 따낼때 같이 한다고 손톱으로 호비 파낸다. 하루종일 하면 손톱이 아파서 손톱을 건드릴 수가 없을 정도다. 옆순이과 상순이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것들을 보면 뱀이 이브의 발뒤꿈치를 깨물듯이, 이브가 뱀의 대가리에 돌멩이를 날리듯이 치열하게 전투가 시작된다. 전생에 포도 옆순과 상순이는 웬수지간이였나보다. ㅎㅎㅎ

 



집 나간 한봉이 돌아오라고 거적대기를 시동생이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있을 때 진작 잘하지 왜 나간 후에 부른다고 저렇게 지저분을 떠는거야

철골은 비가림 시설이다. 저 위에다 비닐을 덮어서 포도나무 위에 비가림 시설을 한다

비가 오면 비가림 비닐 밑에서 일을 하는데 어깨에 빗방울이 떨어져도 소나기는 임시로 피할 수가 있어 좋은데 일하다 소나기 만나면 비닐 밑에 쪼그리고 앉아 비안개 가득한 포도밭의 저쪽 끝을 쳐다보는 낭만도 꽤나 거시기 하다.

 



어지가이 아침에 한 골 잡아 마무리하며 손바닥을 내밀어 햇살을 받아본다

딱 점심 먹을 때임을 알 수 있는 가벼운 열두시반점의 햇살 무게

밭둑가의 나무파레트 하나 엎어 놓고 그 위에 싸들고온 도시락을 열어 놓고 물 한 모금 마신다

고스방은 밭이나 논에서 뭘 먹으면 언제나

"천만석 쏟아져라 고시래.."하고 밥덩이를 논이나 밭에 던져준다. 근데 나는 그거 한 번도 안하고 내 입에 들어가기 바쁘다

 



맛있게 도시락 다 먹고, 얌전하게 보자기로 싸 놓고는 고 옆에 고대로 누워서 한잠 때린다

옛날에 모심기하고 흙발에 점심 먹고 담배 한대 피우고 논둑에 그냥 누웠으면 양놈들이 그걸 보고 저렇게 더럽게 음식먹더니 다 죽었다고 소리질렀단다. 웃기는 짜장들이다.

십수년 손 안 씻고 밥먹어도 나는 안 죽고 잘 살아 있다.

 




나를 실어 나르는 애마 <매태지>

자전거타고 포도밭 가면 가는데 힘이 다 빠졌다. 그래서 고스방한테 스쿠터 사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사 주었다. 17년 살면서 흔쾌히 해 준 몇 안되는 일 중에 하나.

새 스쿠터를 사서 사흘만에 밭에 일하고 오다고 한쪽 브레이크만 밟아서 넘어졌다

넘여져도 속도감 있게 넘어지니 200도쯤 원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넘어졌는데 발목에 피는 철철 나도 오토바이 옆구리 다 갈아부친게 겁나서 그 길로 수리센터 가서 백밀러 두개 바꾸고 허옇게 드러난 오토바이 옆구리에 메니큐어를 사다 칠해놨다

 

나중에 고스방이 자기 차를 닦으며 내 오토바이도 새거니까 닦아 준다고 씻다가 뭣이 좀 표면질감이 이상하더란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이놈으 여편네가 사준지 나흘도 안 된 오토바이를 다 긁어놨더라나.

다리가 아파도 오토바이 땜에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일하러 다니는 내 심정을 몰라주고 한 소리 한다.

어쩌란 말이여 이왕 그리된거...그래도 매니큐어 발라 놓으니 감쪽같지 않나 고스방?

고스방의 눙깔이 화악 돌아간 이야기는 뭐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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