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4일 토요일
누추한 촌 여편네의 삶에 <길 위로 나섦>은 늘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그것이 비록 시아주버님의 제사일지라도 명절 날 열서너시간의 길맥힘까지 부러운 사람이고보면 붙박이처럼 촌구석에 박혀 산다는 일이 하냥 삼백육십오일 웃고 지낼일 만은 아닌 것이다.
사월 초파일날 남편의 젤 큰형이 고운기씨가 세상을 버리었다. 그 때 아즈버님의 나이가 마흔여섯. 지금 고스방의 나이보다 두 살이 적었다.
장남이 목숨 줄을 놓아 버리는 바람에 집안의 비탄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는데, 아버님은 그 때부터 신증후군이라는 병을 얻으셨고 언제나 특출한 인물을 가지신 분이 화악 늙어 버리셨다. 그 후로의 사소한 갈등이야 ..
첫제사는 우리집에서 지냈다.
형님이 조카와 같이 인천에 사는데 제사를 거기서 안 지내고 우리집에서 지내는 것이였다
내가 그 때는 결혼한지 삼년째 되었는데 집에서 제사를 지내니 아들의 제사를 지켜보는 시부모님의 심정이 그럴 수 없이 보기 안타까왔다. 그래서 내가 형님에게 부모님 심정 대하기 너무 참담하니 형님이 제사를 가져가서 지내세요 하고 모질게 말을 하였다. 듣는 형님은 모질지 모르지만 한번 그렇게 말하길 잘 하였다. 그 다음 해 부터는 우리집, 작은집, 둘째 형님집 모두 차를 타고 부평까지 제사를 지내러 다닌다.
토요일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려 새로 찧은 쌀에 매번 제기를 장만하지 않고 접시에다 제사상을 차리기에 이번에는 제기도 한 박스 마련을 하고, 과일과 동서가 봄에 꺾어 말린 고사리를 가지고 길을 떠났다. 오늘 가면 제사를 지내고 그 밤중에 식구들을 다 데리고 다시 황간으로 내려온다
어지간하면 하룻밤 자고 내려올 터인데 그리하지 않는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말기나 나는 딸아이와 같이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다른 식구들은 다 돌아가고 나는 내일 간송미술관에서 단원김홍도 특별전을 하는 곳으로 가기로 며칠 전에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같이 내려가면 될건데 꼭 혼자 남아 뒤처진다고 고스방이 내려가는 차에 발을 올리면서까지 궁시렁거린다.ㅎㅎㅎㅎ어쩌것어요 써방님 한 번만 봐 주시구랴.
2005년 5월 15일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뜬다
욕심은 오직 하나, 간송에 가기 위해서다.
딸을 독려해서 길을 재촉한다.
공기가 도시는 나쁘니어쩌니해서 일년에 한 번 맡는 부평의 공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전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와서 딸아이에게 남대문 시장을 구경시켜준다.
일요일 아침이라 상가는 거의 문을 닫았고 일본아지매 관광단이 거리를 점령하였다
하나같이 샤기커트를 한 아지매들이 한류스타들의 사진이 든 비닐봉지를 무슨 목걸이처럼 매달고 참새처럼 짹짹거린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딸래미가 노점의 떡뽁기를 사달란다
까잇꺼..아줌마 떡볶기 한 접시 주세요
한개를 입안에 가져가서 씹더니 딸아이 인상이 돌아간다.
돈이 아까와 먹는다며 몇개를 억지로 먹더니 이쑤시게포크를 실그머니 놓고는 일어선다
틀리지.. 집에서 쌀 담궈 방앗간에가서 찰지게 빼와 집에 고추장으로 양념해서 먹는 떡볶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지.
전철역으로 다시와서 성북동 간송미술관이라 성북 전철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와서 물어보니 거긴 월계동이란다 어이구...그래도 경찰서가서 물어보니 지하철 갈아타는 것을 자세히 알려주신다. 다시 전철을 타고 창동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타고는 한성대역에서 하차를 하였다
한성대역 6번출구로 올라오니 팻말이 보인다. <간송미술관1100M>
딸아이와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성북동 길을 걸어간다.
걷는 것은 영 젬뱅인 딸아이의 인상이 돌아간다. 머리는 철철 빠져서 목덜미에 달라붙지 가방은 무겁지 벗어 들은 자켓은 걸구치지..햇볕은 쨍쨍, 발바닥은 아프지.
아...또 있다
내일 캠프를 가야하는데 길 우에서 딸래미는 생리가 시작되었다 ㅋㅋㅋㅋ
간송으로 가는 길은 충분히 걸어갈 만하다. 길 가의 가로수도 물론 있거니와 길 중앙에도 도로분리대에 나무가 심겨져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니 인도에 꽃가게에서 내어놓은 꽃들이 중앙에 있어 도시의 길 같지않게 환하고 이뻐서 사뭇 발걸음이 가벼운데 딸아이는 그저 똥씹은 인상이다.
지난 여름 차를 타고 간송에 잠깐 온 적이 있었다. 지난해 오월에는 대겸재전을 하였는데 그 땐 사정이 여의찮아 갈수가 없었다. 그 안타까움을 작년 팔월 서울 올라온김에 들렀는데 미술관에는 들어 갈 수 없고 바깥 정원만 잠시 둘러보고 갔다.
성북 초등학교와 비스듬히 대문을 마주하고 간송미술관이 있다
대문 기둥에는 단원대전이라고 붓글씨로 전시회를 한다고 붙여 놓았다
마침 학교에서 행사를 끝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부형들이 많이 찾아왔다
학교 마당에는 자동차가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처럼 가득 들어찼다.
이제 그렇게 보고 싶었던 간송의 소장품을 보게 된다.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스방이 없다 (0) | 2005.05.19 |
---|---|
포도밭 이야기 (0) | 2005.05.17 |
밥이 사람을 먹다 (0) | 2005.05.13 |
험,험, (0) | 2005.05.13 |
글이란게.. (0) | 2005.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