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삼순이를 보다가 차를 찾는 전화가 와서 고스방이 나갔다
지금시간 밤 10시 50분.
지난 일요일 이순신 녹화사건 이후로 고스방이 우리 모두에게 계엄을 걸었다
집구석에서 딸, 아들, 나 이렇게 셋이서 뭉쳐 웃으면 눈꼬리 돌아간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들어와서도 밥상을 차리는 내게 시비를 건다. 열번 시비를 걸어도 열 한번을 고분고분한다. 수박 가져 오라면 수박을 대령하고, 자두를 가져 오라면 자두를 턱밑에 엥기고, 씻어오라면 뽀드득 자두 껍데기가 벗거지도록 씨서 갖다 놓고, 먹다가 흘리면 냉큼 물수건 땡겨주고, 옥수수 가져오라면 낳아서라도 삶은 옥수수 옆구리에 붙여 놓고....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제 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으면 전기세 아끼야지 티비를 두 대나 틀어 놓고 본다고, 자기가 끌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아이들 티비를 끄라한다. 전기세 아끼야한다고 하는 사람은 밤새도록 티비 틀어놓고 거실에 불 켜놓고 코 골고 잔다. 내가 당신은 티비 켜놓고 밤새도록 자잖아 했더니 또 눈이 휙 돌아간다. 일부러 그랬단다. 허이고..
저녁을 먹고는 아들놈에게 바깥에 있는 마늘을 좀 가져오라 햇는데 울 아덜놈이 잘 못 알아묵고는 마늘 한 접 묶어놓은 뭉태기를 다 들고 왔다. 그러니까 쌍심지를 키면서 말귀를 못 알아 묵는다고 또 잔소리를 한다. 몇 통 빼놓고 마늘 다발을 밖에 내 놓고는 울 아덜이 손을 씻으러 부엌으로 들어 오길래, 내가 부엌에 앉았다가 아들을 보고 눈을 찡긋하면서 무언의 말을 하였다
'아들아 좀 참어..아빠가 기분이 안 좋으신 모양이야'
아들놈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눈을 찡긋하며 실쩌기 웃는다
그래서 내가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었더니 어이구 스방놈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왜 웃엇!"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냥... 웃었어요"
"웃을 상황이 아닌데 뭐라하고 웃었어?"하고 다그친다
"병조 손 씻는거 보고 웃었당께?"
"그기 아니라. 왜 웃었는지 말 못해!"
어구야..귀신이 따로없다. 거실에 뒤로 돌아앉아 마늘을 까면서 어찌 부엌에서 내가 흘린 웃음 한 토막을 저리도 귀신같이 알아차리나..그 뜻을 말야
울 아덜하고 나하고 속이 콩알만해가지고는 막 속뜻을 불으라고 하면 어쩔까 하고 조바심을 치는데 다행이 그러지는 않는다.
딸을 보면 딸 한테 시비, 아들이 걸어 가면 걸어가는 것도 시비, 내가 선풍기를 틀면 자기는 에어컨을 틀면서도 시비. 불 꺼라 불 켜라...제 망막에 비치는 사람마다 시비를 건다 어이구 못 살어...
가만히 짚어보면 딴 이유가 아니다.
날은 더운데 일거리는 별로 없고, 집 구석에 와 보면 자기 혼자 일하고 나머지는 다 놀고 먹는 것 처럼 보이니 자꾸 짜증이 나는거다. 내가 어디 돈 벌러 나가겠다하면 쌍수를 들어 반대를 하면서도 심사가 뒤틀리는 날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시비를 건다. 누구라도 그 시비에 걸리면 그 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것을 폭발시킬셈이다. 내가 알쥐....그래서 절대 안 건드린다
죽여줍쇼 하며 수구리 해서 눈치만 살살 본다
아이들도 숨통이 막히고, 나도 숨이 답답하고...이렇게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화풀이를 하고 있다. 켁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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