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치사한 이유

황금횃대 2005. 8. 12. 00:21


 

 

어머님 연세가 올해 여든 셋이신데 손으로 콩국수를 밀어서 썰어 놓으시면 이렇게 곱게 써신다

아버님 좋아하신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머님은 헉,헉, 거리시면서 솔방울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국수를 미신다.

나는 몇 번 해보고 영 실력이 늘지 않아서 손칼국수 미는 것을 고만 포기하고 말았다.

어머님은 무엇이든 곱게 채을 써신다. 호박에 새우젖 넣어 풋고추 다져넣고 폭 쪄서먹는 반찬도 호박을 얼마나 곱게 채치시는지, 어디 그것 뿐인가? 고추를 썰어 넣어도, 감자채를 썰어도 입 안이 간지럽게 곱게 써시는 것이다.

 

이 심보 싸나운 대추나무집 시째미누리는 그것을 본받을 생각은 안 하고 매번 어머님 곱게 써는 음식재료에 질투를 한다.

채칼에서도 말했지만, 나도 츠자적에 숱하 부엌 살림을 해서 채써는 것은 그럭저럭 미운티를 안 냈는데, 어머님이 저렇게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용수염처럼 가늘게 썰어 놓으시면 고만 기가 죽는다. 기만 죽는가? 괜히 저렇게 곱게 썰면 씹는 맛이 없어 벨로야 하고 눈을 샐쭉하며 심술궂은 말을 앙가슴에 살짜기 퍼붓기도 하니....

 

둘째 아이 낳고 아즈버님 돌아가시고 난 뒤 아버님이 통 식사를 안 하셨다. 암것도 모르는 새댁이가 아버님 국수를 밀어 보겠다고 덤볐다. 그 땐 우리집 본채를  약간 넓히는 보수 공사를 하는 중이라 시부모님과 우리 내외, 아이 둘과 같이 아랫채에 임시 기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엌이란게 그냥 가마솥 걸린 아궁이가 있고 대충 그릇 엎어 끼니만 겨우 해 먹고 있었으니 변변하니 판판한 구것이 없었다. 돌 겨우 지난 아들놈은 깨어서 삐약거리지...그래도 일념, 아버님 콩국수 밀어 드리면 식사를 좀 하실것 같은 믿음이 머리 속에 가득찼기에 아이를 들쳐엎고 아랫채 쪽마루에 궁딩이 한짝 걸치고 아이를 얼러가며 국수를 민다. 이놈의 국수판이 얇게 얇게 밀려가야 나중에 국수를  썰어도 곱게 썰릴건데 잘 안된다. 주먹만하게 뭉친 밀가루 반죽이 손수건만했다가, 밥상보만했다가, 보자기만하게 자꾸자꾸 밀려나가 점층구조로 커져야 할 반죽이 그렇들 못하고 자꾸 중간에 빵구가 나고  영 생각되로 되질 않았다.

 

두껍고, 얇고 ...각양각색의 두께를 거느리고 칼국수 한 그릇을 끓여 드렸다.

팥죽같이 땀이 흐르고, 아이는 몇 번의 추임새로 추겨 올렸음에도 궁딩이 끄트머리에서 디룽디룽 달려 안 떨어질라고 지 딴에는 용을 쓰고 있다.

 

그거 한 그릇을 드시고 아버님께서 기운을 차리셨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없다.

그 날 이후로 고만 국수 미는 것은 영영 빠이빠이하고 말았으니.

 

어머님이 마른 가루를 솔솔 뿌리면서 국수빤대기의 평수를 늘려가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못하니 더욱 신기할 밖에.

할려고, 아니, 배울려고 마음만 먹으면 까잇꺼 밀가리 이십킬로그램 한 푸대 사다가 주야장창 밀어재끼면 나도 종잇장 같이 얇게 밀어 거미줄같이  가늘게 썰어내기야 하겠지만. 이상시리 칼국수 만드는 것만큼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별루 없다.

 

필경 무슨 까닭이 있는게다. 차마 내 입으로는 뱉어내지 못하는 치사하고 치사한 이유가 ㅎㅎㅎㅎ

 

오늘 숙제.

 

그 치사한 이유가 뭘까요?????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花失里  (0) 2005.08.12
볼펜들....  (0) 2005.08.12
세경  (0) 2005.08.11
기둥을 세우자  (0) 2005.08.10
채칼 시범 조교  (0) 200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