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뒤안을 들락거리며 수정과를 맹글어 놓고, 오늘은 아들놈 윽박질러 집구석 청소를 한다. 자잘허니 떨어진 느릅나무 잎들이 바람부는대로 쏠려 귀퉁이마다 소복소복 쌓여있다.
어디 그것만 있는가. 지난 초겨울 김장하고 버린 배추시레기에 겨울 내도록 내다버린 생활쓰레기까지 집 안 거름자리에 얼었다녹았다 하였으니.
노란외발 구르마에다 네바리 실어서 자두밭까지 갖다 버리고 오니 마지막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지푸라기며 날리는 비닐봉다리에 아랫채 푸세식 화장실 바닥까지 싸악 쓸어 태운다
이렇게 낙엽이며 쓰레기 태울 때마다 백석의 시가 생각난다.
■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대빗자루 턱 밑에 공가놓고 시륵시륵 타다가 불어 오는 바람에 화들짝 살아나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면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까지는 아니더래도 공연 코끝이 맵싸해져 목장갑 낀 손등으로 콧등을 씩 훔쳐내는 그런 정서는 있는게지.
사람이 악착같이 벌어서 딴에는 고상허게 산다고 목에 힘을 빡빡주나 구르마에 쓰레기 실어 낼 때보면 맹 먹고 똥맹그는일 밖에 안 하는거 같어. 타다 남았던, 찢어졌던, 검은 비닐봉다리는 왜 그리 처처에 휘날리고, 두어달을 꿉꿉한 물기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하나 상함없이 뺀질뺀질 얼굴을 내미는 치약튜브와 알미늄은박지들...그런 것들을 똥내나는 속에서 따로 건져내자면 목덜미에 소름이 오싹 끼는 것이다. 이렇게 무대뽀로 살다보면 언젠가 저런것에 파묻혀 숨도 못 쉬고 헉헉대는 날도 오리라. 내가 말을 해놓고 보아도 무섭다.
그렇게 한 나절을 입 안에 쓴내가 나도록 집구석을 치운다
소막 안에는 지난 가을 팔아치운 소의 고삐가 작금도 기둥에 매여있어 빗자루질 하다가 소 고삐를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소는 이미 운명을 달리해서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 그 역시 똥으로 산화하였으리라.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해 준 그 소는 내생에 또 무엇으로 태어날까.
대형전기밥솥을 끌어 안고 안채로 올라온다
시래기가 말라가는 고방 앞을 지나고, 초겨울 첫 추위에 일찌감치 얼어죽은 선인장 화분 앞을 지나고, 고스방이 열심히 사보고 모아놓은 스포츠신문 꾸러미를 지난다.
엿질금을 치대서 물을 가라 앉히고 흰 쌀밥을 되게 지어 단술을 앉힌다
어머님은 어설픈 며느리가 못 미더워 살금살금 김치국(나박김치)을 미리 담그시고, 선물로 들어온 사과박스에서 차례에 쓸 과일을 따로 챙기신다.
그렇게 설명절은 코앞에 다가오고, 내일이면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와 식솔들이 환한 웃음으로 삽작문을 열고 들어설게다
나는 전부치던 밀가리 묻은 손을 황급히 앞치마에 닦으며 그들을 맞을 것이고
이왕 먹는 나이, 맛있게 먹자며 멀리서 전화를 건 언니에게 밝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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