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떠 오르는 태양, 꺼져가는 촛불

황금횃대 2006. 1. 30. 21:08

딸과 나는 무슨 연유인지(연유야 뭐 있겠어? ㅋㅋ) 음력설을 지나자마자 일주일 안에 세상으로 나왔다.

 

음력으로 딸아이는 정월 초나흗날, 나는 초 이랫날, 딸과 나는 사흘 차이로 났지만 양력으로는 생일이 삼십일로 똑 같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음력 생일을 지켜서 따로 따로 미역국을 끓여 먹었지만 이즈음 저나 나나 어머님의 음력생일 고수를 타파하고 양력으로 생일을 통합했다. 올해는 설 바로 다음날인 오늘이 생일이다.

 

아침, 날이 밝자마자 딸년의 핸드폰은 연신 생일 축하 문자가 배달 되느라 개신교 예배당 종치듯 띵동소리가  날아 드는데 어짜다 부르르 떨리는 내 셀폰에는 거의가 인디안모드라느니 00안경원이라느니, 옷집, 안경집, 보험회사.. 이런데서 상업용으로 보내는 메시지만 도착하는 것이다.

거기다 딸아이는 컬러메일이라는 희안한 것이 오는데 노래도 불러주고 행벅한 생일날이라는 영문자가 뒤뚱떼뚱 춤을 추며 움직이는 고런 것도 오는 것이다.

 

내가 그걸 들여다보며 신기해 하는데 딸년 왈, <엄마 폰은 이런거 보내줘도 볼 수 없는 꼬진 폰>이라는 치명적 말까지 덧붙이니 사람이 참말로 별것 아닌 일에 부애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점심 때가 되자 딸아이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자친구랑 생일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나간다. 남자 친구 이름의 끝자가 <곤>이여서 우린 그 아이의 별명을 밑도끝도 없이 '명태내장'으로 지어 놓고는 흥! 명태내장이 밥을 먹잔 말이지? 하며 질투를 한다

 

저녁에 돌아 온 딸아이는 붉은색 티셔츠를 선물로 받아왔다. 커다란 종이 가방에 넣어서 소중하게 전해주고 고맙게 받았을 딸아이를 놀리느라 "곤이가 제 엄마의 뼛골을 빼서 여친에게 선물을 하는구만..'하고 입을 삐죽거리며 핀잔을 한다. 딸은 으흐흐흐흐 웃기만 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동네 친구들이 또 저녁에 맛있는거 먹으며 놀자한다며 다시 나갔다.

나가는 뒤통수에다 대고 그렇게 먹어대다간 아빠가 붙여준 <고무다라이>란 별명이 영 굳어질 수 있다고 쏘아댄다. (고무다라이는 엉덩이가 고무 다라이만큼 크다고 붙여준 별명) 그렇게 얘기해도 딸은 나가서 휴게소에서 알바하던 친구들이 생일이라고 사온 핫바와 감자버터구이를 먹고 왔다고 얘기한다. 나는?

 

하루종일 딸의 행보에 질투만 잔뜩 하다가 늦게 들어온 고스방을 쳐다본다

내 생일인줄 뻔히 알 것인데 친정에서 케익 먹었다는 얘길 어디서 들었는지 빈 손으로 들어온다

여보..뭐 없어요?

뭐?

내 생일인데?

생일이면 뭐..며칠 전에 꽃다발 줬지. 케익은 처가집에서 먹었다고 했지..설명절에 맛있는거 많이 먹었지..뭘 더?

 

뭘 더? 하는데 정신이 퍼뜩 든다

이 나이에 뭘 더 원하는가.

굳이 갖고 싶은게 뭐냐고 물으면 이것저것 댈 수는 있으나 꼭 갖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저렇게 유난스레 이쁜 것도 없고 진저리치게 싫은 것도 없게 만든다

예전에는 원했던걸 갖기 위해 뒷돈도 모으고 그랬으나 이젠 그런 것도 없다. 형편이 되서 하고 싶으면 하고 못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악세사리도 그렇고 보석도 그렇다. 옷도 그냥 걸치고 다닐게 있으면 되었고 먹는 것도 그만 하면 만족이다. 간절히...라고 발음하며 가져야 할 것들이 없어졌다.

 

그래도 여편네 생일인데...하는 말에 고스방은 나를 태우고 추풍령 휴게소가서 차에 가스 넣어 오자며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내 좋아하는 뼈로가는 칼슘우유 1리터짜리를 사 주는 것으로 끝이다.

 

마흔 넷 여편네가 우유 한 통 거뜬히 마시고 스방한테  눈짓을 한다.

"당신도 가서 샤워하고 와요"

"잉? 샤워? 씻고 오면 잡아 먹을라구...어이구 무시워."

 

떠오르는 태양같은 딸아이는 생일 스케쥴 소화해내느라 발바닥에 땀이 나고요, 꺼져가는 촛불 상순이는 그야말로 사그러져가는 촛불처럼 스러져 잠만 잤데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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