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밤나무 그늘 아래는 지금 천국이지를

황금횃대 2004. 4. 19. 22:48

오후 네시의 넘어가는 태양은 만물을 부시게 한다.

겨우 오분정도 늦었는데 천천히 오라는 내 말에 그녀는 고맙습니다하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그녀는 그렇다.

시커먼 이 촌아짐마가 머 그리 보고 싶었노 갱상도 아지매의 무 자르는 투박한 말씨에도 그녀는 배시시 웃는다.

하얀색 승용차의 의자는 따끈따끈하여 아픈 내 허리에 핫백을 대어놓은듯 시원하고 적당히 땀까지 나게 한다.

주인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따라 자동차환경도 적절히 변화 해 주는 걸 보면 사람과 물체와의 교감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일찌기 아줌마와 츠자와의 관계가 가장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다면 보험회사 대리점 사무실 정도가 가장 손꼽을만 하다.

거기선 갓 입사한 아가씨도 사오십의 연륜을 바퀴를 금방 제 몸에 장착하고 그 또래의 아줌마들과 농담과 실적종용을 아주 능란하게 이끌어가고, 사오십대, 심지어 육십대의 아줌마들도 그 앳된 아가씨와 더불어 계산하고, 계획하고, 경영하는 일들을 나이의 상거에도 관계없이 잘 풀어나간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 페이지는 각종 먹을 집들이 현대적으로 혹은 옛멋을 살려 지어져 있고, 그 건너편에는 일제시대때 지천으로 심었다는 아카시아가 마악 꽃송아리를 늘어 트리며 웃거나 혹은 낮잠을 자는 중이다.

총각버섯이 무엇인지 아직 본적이 없지만, 밤나무 그늘이 제법 도톰한 집 입구에는 총각버섯과 묵을 맛있게 취급한다는 휘장이 나부낀다. 유원지에서 십수년 굴러 먹던 몸으로 퇴락의 시절에 픽업되었을 나룻배 위에 평상널판지를 덧대어 만든 자리다. 군데군데 눈 닿는 곳마다 적절히 오월의 나뭇잎이 곰살맞은 웃음을 웃고 있는 배경 속, 마치 수상시장을 코디시킨 것 같은 멋진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맨발이 나무 위의 니스칠에 차갑게 입맞춤 할 때의 시원함을 아는가? 따끈한 다시물에 도토리묵이 어설픈 칼잽이의 서글픈 채썰림으로 몇가지의 고명을 화환처럼 이고 나왔고, 두툼한 골파전에 자잘한 오징어살이 보석처럼 박힌 파전도 나왔다. 짭짭한 지꼬추 다진것과 간장. 삭은 깍두기에 다진 김치. 동동주 한 사발이였으면 금상첨화였을 걸, 나는 한꺼번에 너무 좋을 것들을 다 취하기엔 가난한 세월을 살았다.

삼십대 그녀와 사십대 나는 네시의 테두리에서 세일러문처럼 시공간 이동을 손 잡는 것으로 쉽게 할 수 있다. 그녀! 상순! 합체!!!!! 일찌기 천국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어우러져 웃음이 반 바가지면, 공감의 끄덕거림이 나머지 반 바가지를 채우는 일이 천국의 일이다.

사방 사센티미터의 잘라 놓은 파전도, 서로가 먹기 좋게 반쯤 갈라 남겨두는 곳, 그곳이 천국이다.

못난 얼굴, 찐빵처럼 눌러진 머리모양이지만, 그녀가 준비해온 디카에 기꺼이 웃어주는 일, 그것이 천국의 일이다.

밀리는 길에서 땀 흘려가며 운전을 하면서도 묵값 파전값 한꺼번에 계산해 버리는 일, 그것이 천국의 진정한 모습이다 푸하하하하하.......

비 오기전 자두밭에 가 봐야지 그녀가 그렇게 익기를 갈구하는 자두가 어디만큼 자랐는가? 잠옷 단추만큼 자랐는가? 아님 마고자 단추만큼 자랐는가?

자두는 늘 익으면 따내서 돈만들어야지 하는 궁리 뿐이였는데, 이제 자두는 그녀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목적물이 되었다

자두야 자두야 어서어서 자라라. 네 꿈이 하늘에 닿도록 야호!!



부록

오후 4시의 햇살 아래 그녀는 서있었다



6시 차는 타야된다고 말하는 그녀를 모른 체 했다



아카시아꽃은 그때부터 꽃망울을 터뜨린 것 같았다

차나 마시자는데 나는 그러기 싫었다



"새우잡이 배에 팔지는 마라"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 도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무슨 말 끝에도 그녀는 웃는다



그녀가 웃자 해가 진다

일어서려다말고 0.2미리 로트링펜을 꺼내는 그녀가 내게 시를 준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그녀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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